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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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

마태복음 6장 33절

설교요약 :

"이 사람의 선택과 그 결말"
2020년 5월 24일 주일예배
창세기 13 : 6 - 13 ; 마태복음 6 : 33


아버지가 고3 아들과 마주앉아 있다가 아들에게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아들아, 너는 앞으로 진로를 어떻게 생각하니?" 그러자 아들이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아버지, 그거 참이슬로 바뀐 지 오래됐어요." 여러분의 진로는 무엇입니까?


사르트르는 "인생은 출생(Birth)인 B와 사망(Death)인 D사이의 선택(Choice)인 C이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6-17)고 하신 것은 '네가 살고 죽는 것도 네 선택에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선택은 첫째, 배우자의 선택과, 둘째, 직업에 대한 선택, 셋째는 신앙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어떤 배우자를 선택하느냐는 일생의 운명을 좌우하고, 어떤 직업을 갖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형태가 좌우됩니다. 그런데 결혼과 직업보다 더 중요한 선택은 신앙의 선택으로, 결혼이 일생의 운명을 좌우한다면, 신앙은 이 땅에서뿐 아니라 죽음 이후 영원을 좌우합니다. 이 세 가지 선택에 후회 없는 사람은 인생에서 약 90%정도의 성취감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몽골은 대한민국보다 16배나 큰 땅에, 3백만 명이 후진국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 나라는 1227년 칭기즈칸이 죽을 때까지 불과 20여 년 만에, 동쪽으론 베이징부터 서쪽으로는 카스피해까지,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몽고가 급속히 몰락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목민족으로 살면서 별다른 문화가 없었기에 정복한 나라의 문화에 매료되어 쉽게 그들과 동화되어 더 이상 몽고인으로 살아갈 이유가 없었던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잘못 선택한 종교로서 교리도 경전도 제대로 없는 라마교로는 백성을 하나로 묶을 수 없었고, 통일제국을 일으켜 세울 정신적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대단했던 몽고제국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른 종교의 선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윌로우 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가 목사가 되려고 결심하게 된 계기를 말했습니다. 20세 때 인생의 목적과 진로를 고민하며 남미를 여행하던 어느 날, 리우데자네이루의 호텔에서 아름다운 해변을 보며 혼자 저녁을 먹는데, 옆자리에 행복해 보이는 한 노부부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여보, 정말 멋있지? 당신 그동안 고생 많았지만 고생한 가치가 있잖아? 여기는 우리가 평생 꿈꾸던 곳이야!" 하이벨스는 이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미를 여행하며 고급식당에서의 한끼를 위해 평생 고생했다는 말인가? 이것이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 날 밤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적어도 이보다는 더 가치 있고, 이보다는 더 영광스런 인생을 살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그가 목사가 된 계기였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이 함께 지내던 좁은 땅에서 두 사람의 목자들이 서로 좋은 목초지와 우물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문제가 나옵니다. 아브람은 '이러다가 아무래도 삼촌과 조카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겠다'고 생각하고는 '차라리 서로 갈라서서 분립하는 것이 낫겠다'고 여기고 조카 롯에게 제의합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8-9). 롯도 그 말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서 어느 쪽으로 갈까 살펴보니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하여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 지라"(창13:11)고 했습니다. 롯의 이 선택으로 인해 그는 끝내 이방인의 조상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롯이 소돔 땅을 선택한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롯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익을 좇아 선택하였습니다. 롯이 아브람으로부터 땅을 먼저 선택하라는 제의를 받고서 소돔 쪽을 바라보니 물이 넉넉하고 땅이 비옥했습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0절). 중동지방에서 물이 넉넉하고 땅이 기름지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조건입니다. 롯은 돈벌이에 좋은 비옥한 땅을 선택하며 소돔 땅의 풍요와 경제적 번영을 생각했습니다. 그의 선택의 조건의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돈으로 이익을 위해서라면 체면이나 윤리 도덕은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갓난애를 태운 유모차를 세워놓고 쇼핑하고는, 아내는 산 물건을 챙기고 남편이 아이의 유모차를 밀고 나오자, 아내가 깜짝 놀라 소리칩니다. "어머나, 여보, 이건 우리 아기가 아니잖아요!" "쉿!" 남편이 입을 아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합니다. "이 유모차가 우리 아기를 태운 유모차보다 더 고급이란 말이야!" 비싼 유모차에 정신팔려 자기의 사랑하는 아기가 바뀌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둘째, 롯의 또 다른 선택의 기준은 육체적 쾌락과 안일이었습니다. 12절에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고 했습니다. 그 동안 들에서 양이나 치다가 도시로 옮기니 편하고 재미가 좋아 점점 더 죄악의 도성 소돔에 빠져들었습니다. 소돔 사람을 뜻하는 영어 '소도마이트(sodomite)'는 동성연애자나 수간(獸姦)하는 자를 말하고, [Sodomy]는 동성연애나 수간을 뜻합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롯의 집에 오자, 동네 사람들이 그들을 내놓으라고 위협하니, 롯이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창19:8)고 말합니다. 당시 소돔 사람들은 동성연애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래 전 미국에서 같은 시기에 클린 타운센드와 마릴린 몬로가 할리우드의 배우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타운센드는 예수를 믿고 할리우드를 떠나 선교사와 결혼했으나, 마릴린 몬로는 계속 섹스 심벌로 할리우드에 남았습니다. 어느 날 몬로는 타운센드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배우가 되기로 했을 때 결심했던 꿈은 이루었지만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어.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이야." 그 후 어느 날 밤 몬로는 자기 인생을 비관하여 약을 먹고 자살했습니다. 그러나 타운센드는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며, 오래도록 보람 있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셋째, 롯은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선택이었습니다. 11절에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났다"고 했습니다. 아브람의 조카인 롯은 하란을 떠난 이래 줄곧 삼촌의 영향아래 살아왔기에, 자신의 보호자이며, 후견인인 아브람에게 아들 같은 의무를 했어야 마땅했으나, 그는 선택권을 행사하면서 아브람에게 양보할 줄 몰랐고, 물질적 이익에 눈이 어두워 이기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는 친척이나 공동체는 상관없이 오직 '내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에만 관심 가질 뿐, 어떤 체면이나 도리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부자가 랍비에게 삶의 기쁨이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랍비는 이 사람을 창가로 데려가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습니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랍비는 부자를 거울 앞에 데려가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밖에 안 보이는데요." 부자의 대답에 랍비가 말합니다. "유리에 은이 칠해져 있을 때는 밖을 볼 수 없지요. 독선과 이기주의라는 은을 벗겨내야 이웃을 볼 수 있고 그 때 기쁨이 있습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히면 자기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롯이 소돔을 선택하면서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그 내면의 영성이나 도덕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3:10). 롯은 땅이 기름진 것만 생각했지, 그곳에 긷든 죄는 무시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쪽을 보니 물이 넉넉하고 초원이 푸르고 아름다워, 에덴동산이나 나일 강변과 같이 기름진 것만 생각하면서,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다'며 죄로 인한 심판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13:13)는 사실은 간과했습니다.


어느 일본잡지에서 5개국 남녀 청년들의 결혼 대상자를 고르는 데, 최우선 요소를 조사했습니다. '부부의 인생관이 같아야 한다'는 일본 38.4%, 미국 56%, 영국 44.5%, 프랑스 57.4% 등 4개국이 첫 번째로 꼽았는데, 오직 한국인만 '경제안정'을 28.6%로 제일로 꼽고, '같은 인생관'은 26.1%로, 그 다음이었습니다. 가치관이 달라도 돈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인격의 결합보다 경제적인 생활만 생각하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둘째, 롯은 이웃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나 좋은 대로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롯은 삼촌 아브람과 갈라서면서 삼촌에 대한 예의도 체면도 없이 그저 저 좋은 대로만 결정했습니다. 롯이 이만한 부자가 된 데는 아브람의 보호와 그 그늘에서 재산을 모았기에, 당연히 삼촌이 먼저 선택하도록 양보하는 것이 도리인데, 삼촌이 그에게 '네가 좋은 곳을 택하라'고 하니까 냉큼 자기 좋은 쪽을 고르는 몰염치한 선택을 했습니다. 성도는 무슨 일에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는 않을까, 교회의 덕을 해치지는 않을까, 다른 성도들에게 시험이 되지는 않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이권 문제가 나오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평상시는 점잖고 좋아 보여도 이권문제에는 눈에 쌍심지 돋우고 팔을 걷어붙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오직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철면피입니다. 롯은 오직 자기의 이익이란 관점에서만 판단하고 선택했던 것입니다. 오직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 체면도 이웃도 없이, 비참하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인간성의 비극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람과 롯이 갈대아 우르에서 나올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히11:8)고 했는데, 저들이 무사히 가나안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이었습니다. 또 저들이 가나안 땅의 흉년으로 애굽으로 피난갈 때, 하나님께 묻지 않고 갔다가 하마터면 아내를 빼앗길 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다행히 아내를 찾았지만, 무턱대고 애굽에 갔다가 모든 걸 다 빼앗기고 망신만 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올 뻔했습니다. 이런 실패를 경험하고도, 롯은 아브람과 헤어지며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할 때,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그냥 자신의 세속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해 버리고 마는 우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그냥 자기 생각대로 결정해버리고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울며불며 '하나님이 왜 이런 어려운 시련을 주시느냐?'며 원망합니다. 직장을 선택하며, 앞으로 전망이나, 출퇴근 거리, 보수 등은 많이 따지는데, 정작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대로 시작했다가 일이 안되면 그때서야 기도하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먼저 문제를 해결한 뒤, 다음에 사건 속에서 문제를 풀어 가셨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가족과의 결별과, 수도원과의 결별이라는 두 번의 결별이 있었습니다. 그 결별 후 가난한 자들 속에 들어가 그들을 위해 구걸까지 함께 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지치고 좌절하는 순간 이전의 편안한 나날이 그를 유혹할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유한 선택과 당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저는 여기 남고자 하며, 당신의 거룩한 뜻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이 순간 제게 용기를 주소서!" 첫 번째 결별은 세속적인 자기와의 결별이었고 두 번째 결별은 거룩한 자기와의 결별이었는데, 그 후 그녀는 주님의 뜻과 하나 되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람은 무엇을 생각하며 선택하였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했습니다.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창13:7).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이 살던 곳에 믿지 않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있었기에 아브람은 '차라리 내가 손해보더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믿는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일 순 없다'며, 깨끗하게 양보하고 물질적 이해보다 하나님의 영예를 더 생각했던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성도간의 분쟁으로 세상법정에서 서로 다투게되자 바울이 말합니다.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고전6:6-8).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성도간에 서로 싸우며 다투기보다는, 차리라 속아주고, 손해보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든 말든, 내 이익이 더 중요합니까, 아니면 내가 욕먹고 손해보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까? 아브람은 믿지 않는 가나안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서 믿는 자들끼리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손해를 보겠다고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물질적 이익보다 인간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창13:8). 아브람은 서로 좋은 땅을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보다, 삼촌과 조카 사이가 훼손되는 것이 더 큰문제로 생각하고 양보합니다. 양보 없는 평화는 없습니다. 링컨은 말했습니다. "시비를 가리느라고 개한데 물리기보다 차라리 양보하는 것이 현명하다." 아무리 따져봐도 마지막에는 상처밖에 남지 않기에 차라리 양보하는 것이 낫습니다.


셋째, 아브람은 부귀영화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13:12). 롯은 물이 많고 땅이 기름진 소알 땅을 보고, 점점 소돔에까지 이르렀으나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에 머뭅니다. 아브람이 처음 가나안 땅에 들어섰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창12:7).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곳을 떠나지 않고 거기에 머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믿음의 자리를 지켰던 것입니다.


20세기의 성자 슈바이처는 23세에 철학박사가 되고, 25세에 신학박사가 되었으며, 이어서 의학박사가 되었고, 마침내 세계적인 파이프오르간연주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 광고판에서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무지와 가난 그리고 질병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이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아프리카의 불행한 저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귀한 생명인데 의사가 없어서 병을 고치지 못하고, 선생이 없어 배우지 못하고 가난에 찌들려 사는 저들로 인해 괴로워하다, 공원에 서있는 흑인노예의 동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누가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이 떠올라, 순간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잣집 문전에서 구걸하던 거지 나사로는 다름 아닌 유럽이란 부잣집 문전에 있는 아프리카로 생각되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7:8)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부귀영화를 초개처럼 버리고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에 들어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먼저, 서로간에 갈등보다 합리적인 해결을 선택합니다.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창13:6-7a). 아브람은 좁은 곳에서 서로 다투기보다 갈라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내게 이럴 수 있느냐?'며 나무라기보다 합리적인 대안을 찾습니다.


다음으로, 다툼보다 대화를 선택합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창13:8).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하기보다 대화합니다. 자기 목자들을 시켜 싸워서 좋은 땅을 차지하려 하지 않고 대화로 해결했습니다. 우리는 대화하고 보면 서로 이해하고 원만한 해결을 할 수 있는데, 대화가 없어서 오해와 갈등을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대립을 풀기 위해 양보를 선택합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 아브람은 자기가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할 명분도 힘도 있었지만, 어른인 자기가 양보합니다. 그는 땅 문제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친척간에 싸우기보다는, 자기가 손해보더라도 깨끗이 양보하고 문제를 은혜스럽게 해결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땅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고, 손해보는 것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아브람은 세상의 좋은 땅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내가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해 손해본다면, 주님이 내 삶을 책임져주시고, 모든 것을 갚아 주실 것이다. 내가 선택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이 더 크고 좋은 것이다"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F.B. 마이어는 "아브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하여 그에게 보장된 것을 롯이 앗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이어지는 15장에서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고 약속해주십니다.


물질적 이익과 육체적 안일과 향락을 선택한 롯과, 주님의 영광과 형제와 화평을 선택한 아브람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롯은 시날왕 등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 죽을 뻔했다가, 아브라함에 의해 구출되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소돔성에 살았습니다. 소돔성 심판 때도, 아브람의 중보 덕에 살아났지만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두 딸이 아버지를 욕을 보여, 하나님의 성민이 될 수 있었던 그는 끝내 암몬과 모압 족속이라는 이방인의 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롯은 성에서 벗어나올 때 그토록 탐했던 재산도 챙기지 못한 채 빈손으로 나오는 처절한 실패와 고독과 부끄러움만 남겼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과의 화평을 위해 양보하고 손해를 감수하고 세상의 번영과 이익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소중히 여겼더니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렇게 축복해주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14-15절). 아브람은 아무 것도 손해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더 큰 보상과 약속과 은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보상입니다.


소련 스탈린 통치시절, 보리스 콘펠드라는 젊은 유대인 의사가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가 만난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헌신적인 전도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의사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영혼의 자유와 평안을 얻고 두 가지를 결심합니다.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가르쳐준 그 그리스도인처럼 '이웃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것과, '복음을 열심히 전하면서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수용소에서도 의사로 일했는데, 한 젊은이가 암으로 고생하자 불법수술을 해주었다가, 법을 어긴 죄로 사형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형 전날, 이 의사는 수술해준 젊은이에게 밤늦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진지하게 전했습니다. 이튿날, 의사는 처형 직전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습니까?" 이때 그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남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후회함이 없습니다." 그는 한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했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약속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이 의사로 인해 살아난 젊은이가 바로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헨리 워드 비처는 "태어난다는 것은 신의 섭리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루소는 "하나님은 우리가 선을 사랑할 수 있는 양심을 주시고, 우리가 선을 알 수 있는 이성을 주시고, 우리가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C.S.루이스는 "천국을 지향하면 세상을 덤으로 얻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지향하면 둘 다 잃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이웃과의 화평과, 교회의 덕을 선택하여, 금생과 내세에 복된 자로 살아갑시다.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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