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1 69회
"네 첫 열매를 여호와께 드리라"
2018년 7월 1일 맥추 감사절
신명기 26 : 1 - 11 ; 요한복음 21 : 15
야심이 많던 프랑스 대통령 드골에 대한 조크입니다. 각국 원수들이 죽어 천국에 오면 하나님께서 일어서서 예우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드골이 천국에 왔는데도 하나님은 꼼짝도 않으시고 앉아 계시더랍니다. 천국문을 지키던 베드로가 하나님께 "주님이시여, 프랑스 대통령입니다. 교회의 장녀 프랑스의 원수가 왔으니 일어서 맞으셔야지요"라고 말하자 "어림없는 소리! 만약 내가 일어서면 저자가 잽싸게 이 자리에 앉아버릴걸!"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하나님 자리까지 넘보는 세상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보면, 산에서 내려온 자라투스트라가 등불을 들고 시장을 헤매며 "신(神)을 찾는다. 신이 간 곳을 아는가"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애절하게 묻습니다. 시장사람들이 반문합니다. "신이 어린애처럼 미아가 되었는가?" 그러자 자라투스트라는 주저앉아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너희들에게 말해두마. 우리들이 신을 죽인 것이다." 니체는 조로아스터교의 교조인 자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최고의 권위를 지녀온 신을 죽입니다. 그리고 나자 미국의 사회학자 마르쿠제 역시 자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신 다음으로 권위를 누려온 아버지마저 죽었다고 선언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권위부재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난 4월 유튜버 유정호(25)씨가 16년 전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찾는다는 영상이 화제가 되었는데, 촌지를 요구하고 자신의 뺨을 때렸다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고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이라면 선생님은 어린 제자에게 못할 짓을 했지만, 이렇게 영상을 통해 선생님을 세상에 망신주는 일은 옛날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시대 형사판례집인 '추관지(秋官志)'에 보면, 부모를 때린 사례는 있지만, 스승을 때린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참 격세지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의 신체에도 서열이 있어, 목 윗 부분인 두부(頭部)는 배꼽 아랫부분인 하체(下體)보다 서열이 몇 곱절 높고, 왼손보다는 오른손이 몇 곱절 서열이 높습니다. 그래서 옛날 깐깐한 선비는 얼굴 씻을 때 서열 낮은 왼손을 쓰질 않고, 또 소변을 볼 때 서열 높은 오른손을 쓰지 않는 것이 법도였습니다. 돈을 무척 천대했기에 기방(妓房)에서 팁을 줄 때는 서열이 낮은 왼손으로 돈을 집어준다 하여 팁을 좌전(左錢)이라고 불렀습니다. 옛날 우리 인사는 읍(揖)이라 하여 두 손을 마주잡고 이마 높이까지 올리는 것을 천읍(天揖), 입 가까이 올리는 것을 입읍(入揖), 가슴 부위까지 올리는 것을 지읍(地揖)이라 했는데, 인사하는 상대의 신분, 벼슬, 항렬, 나이에 따라 이 읍(揖)의 고도가 달랐던 것을 보면, 무서운 서열 민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위아래를 구별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민주화라는 명목으로 장유유서(長幼有序)가 물구나무 서너, 하나님까지 발아래 까뭉개고 있습니다.
오늘은 맥추절(麥秋節)입니다. 맥추절을 초실절(初實節), 혹은 오순절(五旬節), 또는 칠칠절(七七節)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처음 익은 열매나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출23:16)했고, 또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출23:19))라고 했습니다. 또 본문 2절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드리라"(신26:2)고 말씀했고, 레위기 에서도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레23:10)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곡식과, 과일의 첫 열매, 동물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는 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첫 열매를 드리라'는 말씀은 현대 도시생활에서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 중에는 농사짓거나 목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곡식이나, 과일, 혹은 동물의 첫 열매를 바치라는 말씀은 우리와는 무관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래서 맥추절이나, 추수감사절 같은 절기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절기를 지키라고 명하신 그 의도를 이해한다면, 요즘처럼 가치관의 혼돈과, 이기주의, 배금주의 풍조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겐 더더욱 필요 적절한 말씀입니다.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에 접어든 출애굽 제 1세대에게 시내산에서 주신 말씀이라면, 신명기는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요단강 동편에서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출애굽 제 2세대들에게 모세가 죽기 직전에 유언처럼 남긴 말씀입니다. 출애굽 1세대들은 바로의 압제를 벗고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기적과,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는 기적을 체험하며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으나, 이들은 모두 광야에서 스러지고, 이제 가나안 땅의 주역이 될 출애굽 2세대들이, 가나안땅의 안정된 생활 속에서, 이전에 베푸셨던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잊은 채, 가나안땅의 이방 문화로 세속화되어 이전의 경건한 신앙을 잃어버릴까 염려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이 신명기 말씀은 물질문명과 세속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더더욱 적합한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맏물을 드리라"(2절)는 말씀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맏물'이란 히브리어로 [레쉬트]로서, 시간이나 장소, 서열 등 그 밖의 모든 분야에서 '첫째' 또는 '시작'을 뜻하는 말입니다. 본문에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서 수확한 최초의 첫 열매로서, 민수기에선 이 '첫 열매'를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민18:12)이라 하여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농사를 지어보면 알지만, 첫 열매가 가장 크고 탐스럽습니다. 처음 맺히는 열매가 가장 크고 탐스럽고, 고추도 처음 따는 고추가 가장 잘 익고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있는 최선의 것, 그리고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존귀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뱀이 인간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5)고 유혹하여,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모든 불행을 초래한 것입니다. 인간의 위치는 하나님 바로 아래에 있어야 함에도,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교만으로, 불안, 고독, 두려움, 갈등을 초래하였습니다. 인간은 겸손히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고개 숙이고 찾아옴으로 진정한 안식과 평안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어로, 'God'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를 뒤집어 거꾸로 쓰면 'dog'로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욕이 되는 '개'가 됩니다. 사람이 항상 하나님을 먼저 찾고,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살면, 여호와께서는 나의 하나님(God)이 되셔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지만, 반대로 하나님을 뒤로 한 채,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면, 그 사람의 인생은, 문자 그대로 개 같이 더럽고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진정 자신의 모든 가치 가운데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는 두 번째 의미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셔서 얻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신26:6-10).
여기에 두 가지 감사가 나타나 있는데, 첫째는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신 데 대한 감사요(6-9절), 둘째는 가나안 땅을 주시고 토지와 소산을 주신 데 대한 감사입니다(10절). 하나님의 은혜로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 땅에서 먹고살도록 땅의 소출을 허락하여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의 입장으로는, 먼저 우리 영혼을 구원해 주신데 대한 감사며, 다음은 우리 육신이 먹고살도록 일용할 양식을 주신데 대한 감사로서, 첫 열매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노력하고 수고해서 얻은 것은 모두 자기 공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농산물은 농부가 수고해 얻은 것이기에 당연히 농부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전문가 연구에 의하면, 한 알의 곡식을 땅에 심어 추수하는데, 농부가 기여한 몫은 전체의 14만 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먼저 그 씨앗이 천부적이고, 그 토지도 농부가 만든 것이 아니며, 땅의 영양이나, 비취는 태양과, 비며, 자연의 조화가 모두 천부적인 것이기에, 농부가 기여한 몫은 고작 씨뿌리고 김매주고 거두어 드린 것으로서, 전체 중의 비중은 14만 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받은 은혜와 혜택을 당연시하여 고마움을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계속 받을 것만 생각할 뿐, 감사가 없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그가 얼마나 은혜나 사랑을 받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얼마나 깨닫고 감사할 줄 아느냐에 달렸습니다. 선교사 스터드(C.T. Studd)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우리의 어떤 희생도 결코 지나친 것일 수 없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알기만 한다면 어떤 헌신과 봉사도 지나침이 없고, 어떤 감사도 과하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세 번째 의미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분께 나의 최상의 것을 드림으로 그 사랑을 표현합니다. 사랑의 척도는 그를 위해 내가 얼마나 희생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고, 나의 최상의 것을 주는 것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를 위해 내 것을 주기를 아까워한다면, 그 사랑은 거짓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무엇도 아까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21:15). 여기서 '이 사람'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투 톤'이란 말은 중성지시대명사로 '이 사람들보다'로 번역했지만, '이것들 보다'로도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네가 지금 물고기 잡고 있는 배나 그물이나, 네 옛날 직업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말씀도 되고, 또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말씀으로도 되며,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말씀도 됩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가, 또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그리고 내가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기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이 거듭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것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며, 이제 그 사랑을 회복시키십니다. 정말 내가 누구를 뜨겁게 사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의 기본 조건은 사랑입니다. 불행하다면 사랑이 식어진 것이며, 사랑이 변한 때문입니다.
프랑스 루이 9세는 마가렛 공주와 결혼할 때 반지에 이런 말을 새겨주었습니다. "나 루이 9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프랑스를 사랑하며 마가렛 공주를 사랑한다. 이 사랑의 순서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을 주셨습니다. 또 이렇게 기탄 없이 사랑을 명령하셨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7-38). 누가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랴만 주님은 당신의 목숨까지 버리시며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에게 이런 사랑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그 무엇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기에 우리에게도 이런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맥추절을 어떻게 지켜야합니까? 첫째, 내 생활의 맏물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신26:10).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가나안땅에 들어와 농사지어 첫 수확물을 거뒀을 때, 내가 농사지었으니, 내가 먼저 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토지의 맏물을 바치며 예배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 비참했던 애굽생활에 대한 겸손한 회고와(5, 6절), 이스라엘을 바로에게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찬양과(7, 8절), 가나안 땅을 허락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가(9절)이 담겨 있습니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말했습니다. "어떤 교인이든지 자신이 무슨 경험을 했든 지에 관계없이,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어려움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주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라. 다른 일들은 지나가게 놔두되 주님께는 소홀하지 말아라." 이 시대는 실용주의, 편의주의 사고가 환영받으나, 우리는 아무리 불편하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최우선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영광 받으셔야 하고, 하나님께 더 큰 존귀를 드려야합니다. 여러분에게 최선과 최상의 첫 열매는 누구에게 돌아갑니까? 하나님이 우리 생명의 근원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시라면, 우리 왕이신 주님께 가장 소중한 첫 열매를 드려야하지 않습니까?
[그 청년 바보의사]의 주인공 안수현은 2000년, 의약분업사태로 전국의 의사들이 파업할 때 고대병원 레지던트로 근무하면서 모든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할 때, 그는 환자들 곁에 있었습니다. 서열이 엄격한 의사 세계에서 자칫 찍히면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었으나, 그는 하루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한 끼를 먹어가며 환자들을 보살폈습니다. 본과 시절, 그는 하나님 앞에 직면했습니다. "네가 날 위해 시간과 마음을 포기한다면, 내가 정말로 기쁘게 네 예배를 받겠다. 하지만 너는 그로 인해 성적이든, 이성교제든, 사람들과의 관계든, 무엇에선가 분명히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도 내게 그 부분을 주겠니?" 시간전쟁을 하는 본과 3학년 1학기 때도 예과 1학년 성경공부 리더를 하였습니다. 그의 우선순위는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 학기 동안 교제하던 자매와 주중엔 만나지 않으며, 우선순위를 위해 즐거움을 유보했습니다. 어떤 이는 안수현은 "잠깐 곁에 왔다 간 예수님 같다"고 말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베푸신 축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여기서 두 이웃을 언급하는데, 먼저 '레위인'이란 하나님만 섬기도록 세상에서 분깃을 얻지 못한 하나님의 종들을 말하고, 다음으로 '너의 중에 거류하는 객'이란 집 없이 떠도는 가난한 이웃을 말합니다. 여기서 레위인에 대한 공궤는 비단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공경과 예우도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 맥추절의 정신입니다.
청년 의사 안수현은 돈이 없어 검사를 받지 못하는 조선족 할아버지의 검사비를 대신 내 주고, 집과 교회 거리가 멀어 차를 타기 위해 예배 중간에 나가야 하는 후배의 운전사를 자청했습니다. 손에는 늘 책과 찬양 테이프를 가지고 다니며, 교회 후배, 병원 동료, 환자와 그 가족들까지 가리지 않고 선물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밤이면 병원을 돌며 맡은 환자들을 붙잡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실의에 빠진 암 환자들을 찾아가 말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2003년 군의관으로 입대한 후에는 병사들의 친구로 지냈고, 영창을 방문해 일일이 책 선물을 했습니다. 군의관 신분상 유격 훈련 등을 하지 않아도 됐지만, 병사들과 함께 행군을 하고 그들과 어울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베푸신 축복을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고 살면서도 기뻐하거나 즐거워할 줄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미 주신 바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 없이, 없는 것만 탓하며 하늘을 원망하며, 자신을 스스로 괴롭힙니다. 이미 얻은 것도 참으로 귀한 것이요, 지금 누리고 있는 것도 부족하지 않은데, 어리석게 없는 것에만 집중하여 기쁨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현대인의 최대 관심은 건강입니다. 한국인 평균수명은 81.8세로, 30년 전보다 10년 이상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100년 전,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평균수명은 33세로 그때 비해 40년 이상 늘었습니다. 현대인의 두 번째 관심은 '경제'로서, 우리나라는 40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여 북한이나 필리핀보다 못살았는데 지금은 경제규모로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데 국민 행복지수는 세계 143개 국가 중 118위입니다.
빌 하이벨스는 그의 책 [인생경영]에서 '믿는 자의 우선순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온갖 부류의 사람, 활동, 업적, 책임 따위에 자신을 아낌없이 후히 내어준다. 시간과 정력과 창의력과 관심을 교육, 직업, 친구, 가족, 쾌락 등에 쏟아 붓는다. 여러분은 어떤가? 하나님과의 관계는 딴전인 채 더 큰 곡간을 짓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다 쏟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람들이 생의 혼란과 공허 속에 무의미와 영적 기갈로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삶의 질서가 깨진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의 질서를 회복하는 첫 단계는 하나님을 삶의 첫자리에 모시고 우리의 최선의 것을 드리며, 이웃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한 즐거움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미국의 실업가 중에 '스탠리 탠' 박사는 회사를 크게 세우고 돈을 많이 벌어서 유명하게 되었는데, 1976년에 갑자기 척추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척추암은 수술로도 약물로도 고치기 힘든 병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가 절망 가운데 곧 죽을 것이라 여겼는데 몇 달 후에 그가 병상에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출근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아니 어떻게 병이 낫게 된 것입니까?" 묻자, 스탠리 탠은 "아 네, 전 하나님 앞에 감사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이 다 나았습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병들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병들어 죽게 되어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살려주시면 살고,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하나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매 순간마다 감사하고 감사했더니 암세포는 없어졌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가 다시 회복하게 된 것은 '감사' 때문이었습니다.
신문에 실린 어떤 기독교대학 교수의 글입니다. "학교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며 그들로부터 많은 인사를 받는다. 그러나 거의 의례적인 인사이다. 허나 때로는 의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정한 감사가 담긴, 나를 가르쳐 주시는 나의 고마우신 선생님으로 알고 진심으로 인사하는 학생도 있다. 그러면 교수도 그 학생 신상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고 기억 속에 입력을 시키며 깊은 마음을 주게 된다." 감사절은 매년 연례행사로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닙니다. 나를 구원해주시고, 크고 작은 고난 중에 은혜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보답하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처음 열매를 드립니까, 아니면 쓰다 남은 것을 드립니까? 많은 사람이 자기 촛불을 이기심을 위해 태우다가 그 연기만을 하나님께 날려드리며, 소중한 생애를 소진시켜 버립니다. 자기 금전과 시간, 그리고 인생의 자원을 자신만 위해 쓰다가, 부스러기를 하나님께 드리며 크게 헌신하는 냥 스스로를 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서 최선의 것(The best), 최상의 것(The first)을 원하신다. 그리고 이웃과 즐거움을 함께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신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