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31 115회
“왕이 없는 세상”
2021. 10. 31. 주일예배
사사기 17 : 1 - 6 ; 마태복음 7 : 21
미가라는 자가 어머니의 은 1,100세겔을 훔쳤다가, 어머니가 은을 훔친 자를 저주하니 그 돈을 어머니께 돌려줍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 은 가운데 200세겔을 가지고 우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집안에 신당을 세우고, 자기 아들 하나를 우상의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타락했던 당시 종교상과 함께, 이러한 잘못된 모습을 통해 오늘 이 시대의 왜곡되고 변질된 신앙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실용주의 종교입니다. 당시 하나님의 집은 미가가 사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멀지 않은 실로에 있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하나님의 집을 두고도 미가는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것이 귀찮아, 자기 집에 교회를 세우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실용주의는 옳고 그름이나,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냐, 싫어하시느냐’는 묻지 않고, 단지 내게 편하고 좋으냐 아니냐만 따지면서 쉽고 편한 것을 추구하면서 어떤 원칙과 진리를 무시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실용주의 세상이 되어 신앙생활도 부담 없이 편하고 쉬운 길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둘째, 기복주의 종교입니다. 어머니는 돈을 잃자 저주를 하더니, 아들이 그 돈을 돌려주니까 금방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면서, 도덕적 가치와 무관하게 축복과 저주를 쉽게 뒤바꿉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눅1:45)와 선한 일을 행한 자(시41:1)에게 축복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미가가 돈을 훔쳤음에도 저주를 바꾸어 축복을 쏟아냅니다.
셋째, 자기 만족을 위한 우상종교입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며, 200세겔을 아들에게 주어 우상을 만들게 합니다. 우상이란 ‘자신을 위해 만든 신’으로, 하나님은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조각한 것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레26:1)고 금하셨는데, 미가의 가정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6절은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17:6)며 당시 시대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왕이 없다’는 말은 국가지도자가 없다는 뜻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자기 왕으로 삼지 않고, 제멋대로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왕이신데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첫째, 자기가 스스로 왕이 되어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17:6)는 말씀대로,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기분대로 행하였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에 대해선 아무 관심이 없고, 오직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고, 내 기분이 어떤가에 의해서만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선택합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에 의한 절대가치가 사라지면, 인간은 가치적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자기 돈을 잃어버리자 대뜸 저주를 하더니, 그 돈을 자식이 가져오자 금방 축복하며, 같은 대상에게 저주와 축복을 쉽게 번복합니다. 절대가치가 사라지니, 상황과 기분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뒤바뀝니다. 하나님과 제사장만 할 수 있는 축복과 저주를 어머니가 이렇게 자식에게 남발하고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 대신 자신이 왕이 될 때, 자연히 도덕적인 부패와 방종에 빠집니다. 가까운 곳에 실로라는 성소를 두고 집안에다 우상과 제단을 만들었던 것을 보면 당시 얼마나 우상숭배가 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신앙을 잃고, 하나님 말씀에 의한 선악의 기준이 사라지자 아무렇지 않게 부모자식간에 도둑질을 하고, 저주하는 일이 난무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혼란된 세상에서 어떻게 바른 가치와 질서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 중심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셔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며 심판주가 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우리 왕으로 모시고, 그분께 경배하며, 그분으로부터 통치와 다스림을 받아야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주님께 다스림 받을 때, 우리는 참된 안정과 평화를 누립니다.
둘째, 성경을 절대표준으로 삼는, 말씀중심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세상 모든 가치관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는 시대에서도, 변하지 않는 성경을 기준 삼아야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일은 하루가 멀게 변하지만, 성경 말씀은 영원토록 변함 없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셋째, 교회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미가 가정의 문제는 가까운 곳에 성소가 있었지만, 자기 집에 신당을 만들고, 아론의 후손만 할 수 있는 제사장을(출28:1) 자기 아들로 세웠습니다. 어쩌면 제사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그 성소 운영방식이 제 생각과 달라서 제 맘대로 믿으려고 집에다 신당을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요즘도 어떤 사람은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나 자기들끼리 예배드리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기도 하니까, 교회를 문제 많은 사람들 집단으로 생각하는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말씀을 절대기준으로 삼고서, 주의 몸인 교회를 섬기면서 충성 다할 때, 이 흔들리고 변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주님의 자비를, 현재의 필요를 위해 주님이 사랑을, 미래를 위해 주님의 주권을 의지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