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님

창세기 2장 1~3절

설교요약 :

“복되게 하신 거룩한 날”
2018년 4월 29일 주일예배
창세기 2 : 1 - 3 ; 고린도전서 16 : 2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남자와 여자의 서로 상이하고 인간적인 관점이 있습니다. 먼저 여자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창조하시고서 그를 보시며 ‘좀더 잘 만들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시고 여자를 만드셨다”고 주장합니다. 즉 여자가 남자보다 발전적이고 진화된 창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의 관점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동물들과 남자를 창조하시고는 쉬셨다. 그리고 나서 여자를 창조하셨는데 그 후로는 동물도, 남자도, 하나님도, 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 두 주장은 모두 틀렸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실수나 결함이 없으실 뿐더러, 창세기 1장에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나서, 오늘 본문인 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안식하셨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문명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일요일을 공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일요일이 공식적으로 공휴일로 정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700년 전인 AD 321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서입니다. 그는 AD 312년 10월 28일 저녁, 막센티우스와 결전을 위해 비장한 심정으로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눈앞에 헬라어 히(X)와 로(P)자 모양의 강하고 밝은 빛이 태양을 가리면서 천둥 같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대는 이 표시로 승리하리라.” 그가 본 빛은 크리스토스(ΧPIΣΤΟΣ)의 첫 두 글자였습니다. 그는 병사들의 방패에 그리스도의 표시 X(히)와 P(로)를 새기고 전쟁에 승리하여 로마 황제가 되어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한 주간 단위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6일간은 힘써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쉼을 가져야 합니다. 한 주일의 기간이 7일이 아니라 10일을 단위로 하였다면 10일은 너무 길어서 사람은 탈진되고 피폐되어 그 수명이 훨씬 짧아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5일은 너무 짧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본래 무신론의 혁명으로 혁명을 이끈 주체들이 7일에 하루 쉬는 것을 10일 만에 하루를 쉬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더욱 많이 일해서 낙후된 국가 산업을 발전시키려고 했는데, 이렇게 10일 단위 휴일을 실시했더니, 전 국가적으로 40%의 결손을 보고 말았습니다. 7일 휴무보다 더 많은 결손을 본 후에 그들은 다시 7일 휴무제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소련의 공산혁명도 역시 무신론 혁명이라서 이들도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레닌은 7일 동안 일하고 8일만에 쉬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1년 52주 가운데 주일과 만나는 날이 7-8차례밖에 되지 않기에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려는 꾀였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전 국가의 생산지수가 30%나 떨어지게 되니 레닌은 말을 바꾸어 “우리는 기독교보다 더 노동자 편이다. 그래서 5일 동안만 일하고 6일만에 쉬도록 하겠다”고 하여 주일과 겹치는 날이 열 번 정도밖에 겹치지 않게 했는데, 생산성이 도무지 향상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성경대로 7일 단위로 바꾸고 말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이레 째 되는 날 안식하시면서, 인간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는 노동의 사명과 함께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20:8)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땅을 정복하고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근로자요 관리자로서 일하게 되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하여 노동을 저주처럼 여기게되었고, 안식은 방종으로 흐르고 말게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며 이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2-3). 이 일곱째 날에 하나님은 안식하셨고, 이 날을 복 주시며, 이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안식일에 대한 세 가지 교훈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 안식일은 하던 일을 쉬고 안식하는 날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2:2). 인간은 지치고 피곤하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니 안식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은 안식이 필요 없을 듯 싶은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안식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해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다”(사40:28)고 했는데, 이처럼 피곤치 않으시고, 곤비함이 없으신 하나님도 안식하시며 인간에게 안식을 명하셨다면, 우리는 피곤하든 피곤하지 않든지 안식을 해야만 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면서 안식을 통해서 얻으신 경험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출31:17). 이 말씀을 영어성경(KJV)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He rested, and was refreshed.” “하나님께서 쉬시고, 그래서 새로워 지셨더라.” 하나님께 안식이 필요하셨다면, 우리 연약한 인간이야 얼마나 이 안식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안식은 곤고한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억지로라도 안식의 가치를 발견하고 안식을 찾아야 합니다. 안식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민족적으로 볼 때,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가장 장수하는 민족은 유태인입니다. 그 장수의 비결은 철저한 안식일의 준수라고 합니다. 텔아비브나 예루살렘 시가지나, 또 유태인이 많이 사는 뉴욕 등지에 가보면 안식일은 완전히 텅 빈 도시처럼 인적이 끊어지고 조용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묵상으로 안식일을 보냅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듣고 교제하는 것 외에는 온전한 안식을 갖습니다. 우리에게는 생활의 리듬이 필요합니다. 일년 365일 동안 쉬는 날 없이 매일 출근한다고 하거나, 반대로 허구한 날 쉬기만 한다면, 다 정신병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옛날에는 ‘빛은 동방에서’라고 하여 동방문화가 서양보다 앞섰습니다. 그런데 그 문명의 발생지인 동방이 휴일 없이 죽으라고 일만 하다가 그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계산해 보면, 지난 2천년 동안 동양이 서양보다 300년 동안 일을 더 많이 한 셈입니다. 일년이면 52주일이니 52일, 십 년이면 520일, 백년이면 5,200일, 천년이면 52,000일이고, 2천년이면 104,000일로서, 어림잡아 3백년입니다. 이처럼 동양은 지난 2천년 동안 무려 3백년 동안이나 쉬지 못하고 죽으라고 일만 했는데, 이로 인해 생활의 리듬이 깨지고, 권태를 이기지 못하여 역사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이 쉬지 못하고 일에만 매이면 이로 인해 강한 스트레스에 사로잡혀, 우리의 지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을 혼란시키며, 의지를 무력화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기억력과 사고력이 감퇴되며, 삶의 효율성을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슬픔을 가중시키며, 불안을 증대시킵니다. 스트레스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위험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신체의 메커니즘으로, 자기방어본능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것이 해소되지 않고 쌓일 때, 고혈압, 심장마비, 위궤양, 불면증, 알코올중독과 각종 암의 발병원인이 되어, 현대인들의 질병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80%이상의 원인제공을 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것을 다스리지 못하여 누적되게 될 때, 삶의 모든 성취를 한꺼번에 파괴해 버리는 무서운 원수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실린 김양재 목사의 간증입니다. - 제 남편은 어느 모로 보나 금 그릇이었습니다. 의사라는 반듯한 직업에 바람도 안 피우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매사에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 권사님의 아들이면서도 본인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듭나고 나서 금 그릇 남편이 깨어지지 않는 것 때문에 너무나 애통했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이 저렇게 개미처럼 일만 하다가 지옥에 가면 어찌합니까? 인생이 허무한 것을 알게 해 주세요. 병원이 망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라도 남편이 주님을 만날 수 있다면 제 목숨을 거두어 가시더라도 남편을 구원해주십시오.” 그렇게 날마다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간증을 하면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떻게 남편이 하는 일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느냐, 꼭 그런 식으로 믿어야 되느냐 하면서 기분 나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 기도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도무지 깨어지지 않을 금 그릇 남편이 급성 간암으로 쓰러지면서 자기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 결국 그녀의 남편은 이제 천국에 가서 안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하나님 말씀이 “일주일에 하루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쉬어라!”하시는 이 계명을 못 지키겠습니까? 이것을 왜 안 지키겠다고 발버둥치십니까? 그러면 그야말로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건강이 보장되도록 의학적으로 돼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쉬어야 되도록 지어졌습니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다 쉬어야 됩니다. 오늘만은 교회에 나와서 깨끗하게 잊고, 세상 걱정 근심 깨끗하게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도와 교제를 나누고 선한 일을 위해 봉사를 하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루를 보냅니다. 이렇게 안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주신 것인데 왜 이것을 마다하는 것입니까?
둘째, 하나님은 이 안식일을 복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3절).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특별히 인간에게 복을 주셨고, 모든 날 가운데서 특별히 이레 째 되는 안식일을 복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안식일 제도가 인간을 얽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2:27). 이것이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것이지, 지키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는 안식일은 하늘나라의 상징으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히4:11)라고 했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주일이다!”하면 올 스톱합니다. 이렇게 습관이 된 사람은 주님이 부르실 때 “가겠습니다”하고 바로 따라갈 수 있지만, 주일을 안 지키게 되면 통하지도 않겠지만 주님이 부르시면 아마 연기하려할 것입니다. 깨끗이 내려놓는 훈련을 쌓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주신 안식의 계명을 지키는 여기에 주님의 사랑에 있고, 자유가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 나오는 사람과 안 나오는 사람을 미국에서 조사해 보니까 나오는 사람이 안 나오는 사람보다 10% 더 오래 살고, 일주일에 한번 이상 더 나오는 사람은 20% 더 오래 산답니다. 우리나라 어느 통계에 의하면 주일의 낙반사고, 익사사고, 교통사고가 평일에 비해 여섯 배나 높다고 합니다. 그러니 주일에 예배드리지 않고 놀러 가는 것은 목숨걸고 여행가는 셈입니다. 주일을 주님의 날입니다. 이 날을 주님께 드릴 때 주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능동적으로, 주님께 나와 주님을 섬기며, 이날의 주인 되신 주님께 경배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 됩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재벌인 스티븐 씨가 “주일날 회사에 나와서 선박의 짐을 내리라”고 지시했더니 한 청년이 공손히 다가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했는데 “내일은 주일이고 교회에서 맡은 일이 많아서 교회에 나가야 하기에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스티븐 씨는 “그렇다면 회사를 그만 두시오.” 그러자 그 청년은 “예. 그것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해야할 형편이지만 주일에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래서 그 청년은 해고되어 한달 동안이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애썼으나 얻지 못했습니다. 그때 마침 한 은행장이 스티븐 씨에게 “은행원 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하자, 곰곰이 생각한 스티븐 씨는 ‘비록 나는 해고했지만 주일 성수를 위해 신념과 뜻을 바꾸지 않는 사람에게 은행 일을 맡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청년을 추천했습니다. 이 청년은 주일문제로 은행장에게 발탁되어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이 안식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3절). ‘거룩하다’는 말은 ‘성결하게 하다’,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일곱째 날이라는 그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따로 구별하신 날이기에 이날이 거룩합니다. 구약에선 제 7일을 안식일이라 하여 성일(聖日)로 지켰지만, 신약에선 안식 후 첫날을 ‘주일(主日)’이라 하여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구약의 최대 사건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이기에 천지창조가 마친 제 7일을 안식일이라는 성일로 지켰다면, 신약에서의 최대의 사건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기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째 날을 ‘주일’이라 하여 성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16:2)고 했는데, 이때 이미 매 주 첫날이 예배일로 지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은 이 날에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으로, 사도행전에도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20:7)라 하여, 안식 후 첫날에 집회를 가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0년 전에는 ‘거룩한 안식일’(Holy sabbath)라고 불러 경건히 지켰는데, 70년 전에는 그냥 ‘안식일’(sabbath)라고 부르며 지켰고, 40년 전에는 ‘일요일’(sunday)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주말’(weekend)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주일 명칭의 변천이 서구인들의 신앙생활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데, 주일을 주말로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중심 삼던 생활이 육신의 휴식을 즐기는 생활로 변한 것을 보여줍니다. 거리의 신호등의 파란 불은 가라는 신호요 빨간 불은 서라는 신호입니다. 달력에서 평일은 검거나 푸른 글자인데, 주일은 빨간 글씨인 것은 일상을 멈추라는 적신호입니다. 이 적신호를 무시하면 사고가 납니다. 나폴레옹 1813년 10월 17일 주일에 영국을 침략했다가 웰링턴 장군에게 망했습니다. 일본이 1941년 12월 8일 주일에 진주만을 기습했다가 원자폭탄에 망했습니다.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에 38선을 넘어 남침했다가 UN군에게 패배했는데, 그 날도 주일이었습니다. 주일은 우리를 복 주시기 위해 성별하신 하나님의 날이지 자신을 위해 쓰는 날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만 돼있는데, 율법을 해석한 미쉬나에는 안식일에 대한 39개 규정이 있고, 거기에다 또 219가지 부칙을 열거하여 씨뿌리는 일, 수확하는 일, 곡식 단 묶는 일, 타작하는 일, 키질하는 일, 곡식 고르는 일, 맷돌질하는 일, 체질 하는 일, 반죽을 만드는 일, 빵 만드는 일, 양털 깎는 일, 끈을 매는 일, 바느질하는 일 등, 자세하게 서른아홉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은 안식일을 금기로만 지켰는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말씀을 선포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선을 행하심으로 이를 새롭게 해석하시며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2: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의 주인께 예배함으로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킵니다. 우리나라는 주 5일 근무로서, 토요일은 구약의 의미대로 육신이 안식하고,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신약의 의미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안식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문제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 웨슬리의 삶은 참으로 고달픈 삶이었습니다. 19명의 자녀를 둔 데다, 남편 새뮤얼 웨슬리는 걸핏하면 빚을 져 집안살림을 어렵고 고달프게 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함으로 자녀들을 믿음으로 훌륭하게 양육하였고, 집안을 잘 돌보았습니다.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그의 책 [내 평생에 가는 길]에서 수산나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신 없이 바쁘고 재정적으로 쪼들리는 삶 속에서 하나님께 내어 드릴 공간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잔나는 분주한 삶의 와중에도 하나님께 공간을 내어드리는 훈련이야말로 영적 안정과 인격적 만족에 필수임을 굳게 믿었다.” 수잔나의 영적 생존 비결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쉼을 통해 하나님께 자신의 공간을 내어 드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한데 있었습니다. 쉼을 통해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은 그리스도인에게는 필수이며, 그 자체로 기쁨이자 하나님을 더 잘 섬기도록 우리를 무장시켜 줍니다.
작가 오정욱은 [빼기의 법칙]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늘상 밥을 담는 그릇의 핵심은 그릇의 재질이나 형태가 아니라 밥을 담을 수 있는 ‘빈 공간’이며, 마찬가지로 집의 핵심은 건축재료나 구조가 아니라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빈 공간’이다.”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손가락에 낄 수 있는 빈 구멍이고, 피리도 속이 비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한 신학자는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괄호’라고 했는데, 글 속의 빈 괄호 안에 더 큰 뜻을 담듯이, 우리는 안식 안에 더 크고 소중한 것들을 담을 수 있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있다고 했는데, 그 공간은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음에도 어리석은 인간은 그 공간을 돈과 권력, 명예와 성취로 채우려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허무와 고독으로 몸서리칩니다. 마음과 시간을 비워야 하늘의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때 애틀랜타의 한 가난한 소년이 마당에서 코카콜라를 팔며 돈을 모아 1946년 치킨샌드위치를 파는 난쟁이 식당을 차렸는데, 15년 후 ‘칙필라(Chick-fil-A)’라는 브랜드로 치킨샌드위치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여 미국 최대 치킨레스토랑 업체로 올라섰습니다. 그는 고객이 가장 많은 일요일에 모든 칙필라 매장의 문을 닫아 매출의 3분의 1을 포기하면서도, 주일은 모두가 신앙과 가족과 이웃을 위해 보내도록 한 것이 자신이 사업가로서 내린 최고 선택이라며, “주일에 사람들이 쇼핑몰로 몰려들어 주위가 온통 부산스러울 때, 당신은 칙필라 매장이 닫혀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건 신을 향한 우리의 고요한 간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원칙과 신념을 버리면서 돈 벌고 싶지 않다”며 “주일 휴무는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지내고 교회 갈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서 억만장자가 된 뒤에도 주일마다 교회 청소년부 교사를 해왔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칙필라가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확고한 기업철학이 뒷받침됐기 때문으로 분석했습니다. 컨슈머리포트의 조사에서 칙필라는 미국에서 가장 맛있고 깨끗한 패스트 푸드점으로 평가받습니다. 회사 이름을 ‘칙필라’라고 지은 것은 ‘저민 닭 살코기 가운데 A등급(Chicken-fillet-A)’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칙필라 매장 1775개는 KFC(4491개)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연매출은 점포당 평균 320만 달러로, KFC의 세 배에 달합니다. 칙필라는 동성결혼 반대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현 최고경영자이며 창업자의 아들인 댄 캐시는 “성경에 나오는 가족의 정의에 찬성한다”며 “칙필라는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지키는 기업”이라고 소신발언을 하여 ‘비즈니스에서 종교적 색채를 없애야 한다’는 경영의 기본원칙을 무시함으로 민주당과 진보시민단체들로부터 불매운동에 시달렸지만 성장세는 지속되었습니다. 외식컨설팅 전문업체 테코노믹의 론 폴 사장은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고객들이 칙필라를 찾아 보답했고, 칙필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고 평하였습니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생각도 없이, 할 일도 없이, 전념할 일도 없이, 그야말로 하는 일없이 완전한 휴식 속에 있는 것처럼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없다”고 말했듯이 사람은 일해야 삽니다. 그렇다고 사람은 일만하도록 지음 받은 일 벌레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죽도록 일만하다가 그대로 죽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여가를 즐기고 안식하기를 원하시지만, 안식일에는 이를 기억하여 하나님 앞에 경건히 나와 예배드림으로 우리가 참으로 복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축복하시려고 구별하신 안식일에 하던 일을 멈추고 경건히 예배함으로, 삶이 풍요롭기를 기원합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5:15).

창세기 2장 1~3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관련영상
52:28
신촌아름다운교회 주일예배
2011.09.11.
01:10:14
신촌아름다운교회 주일예배
2012.04.01.
59:40
신촌아름다운교회 주일예배
2012.03.11.
01:00:10
신촌아름다운교회 주일예배
2012.01.22.
57:23
신촌아름다운교회 주일예배
2012.02.26.
01:04:58
신촌아름다운교회 주일예배
2012.02.19.
52:56
신촌아름다운교회 주일예배
2011.10.02.
01:00:44
신촌아름다운교회 주일예배
2012.01.29.
01:06:30
신촌아름다운교회 주일예배
2012.03.18.
45:02
신촌아름다운교회 주일예배
2012.01.01.

© Copyright 2011 - 2024 쉐마TV. All Rights Reserved
Serviced by 루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