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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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님

요한복음 13장 1~11절

설교요약 :

"섬김의 본을 보이신 그리스도"
2019년 4월 7일 주일예배
요한복음 13 : 1 - 11 ; 창세기 18 : 3 - 5

어느 강연회에서 연사가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세 가지가지 금'은 돈을 뜻하는 '황금', 음식을 뜻하는 '소금', 그리고 시간을 의미하는 '지금'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남자가 이 말이 너무 멋있어서 아내에게 문자로 퀴즈를 냈습니다. "여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중요한 세 가지 금이 뭐야?" 잠시 후 아내한테 문자가 왔습니다. "현금, 지금, 입금." 남편은 황당해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방금, 쬐금, 입금."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중요한 이상과 가치는 무엇일까요?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또 한 가지, 그리스도의 삶을 상징하는 세 가지 상징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을 때 누우셨던, '말구유'입니다(눅2:12). '말구유'는 아기 예수께서 누우셨던 곳으로,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에 오신 겸손과 자기 비하의 상징입니다. 둘째는 '세숫대야와 수건'입니다(요13:4-5). 주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 쓰신 '세숫대야와 수건'은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셔서 사람들을 섬겨주신 상징입니다. 셋째는 '십자가'입니다(벧전2:24).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신 십자가는 희생의 절정으로, 이 십자가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말합니다. "대야와 수건은 섬김이요, 십자가는 순종의 표시이다. 그리스도인의 손엔 언제나 이 섬김의 표시인 대야와 수건이 들려 있어야한다."


니체는 '인간 존재의 본질은 권력에 대한 의지'라며, 인간의 지배욕구는 인간 존재 깊은 곳에 뿌리박고 있는 가장 강렬한 욕구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을 공산화한 모택동은 "모든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했고,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태초에 힘(권력)이 있었다"며, 세상은 힘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상은 힘센 자만 살아남는 듯 싶지만 이런 강한 자들은 자기 힘을 믿고 의지하다 스스로 그 힘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영국의 기독교사상가인 말컴 머거리치는 "바로 이런 힘을 추구하는 철학이야말로 현대 정신사의 타락의 징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1878년 윌리엄 부스의 구세군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자, 미국에서 한때 주교가 되려고 꿈꾸었던 사무엘 브랭글이 구세군에 입대하기 위해 영국에 왔습니다. 부스 사령관은 처음 브랭글을 보며, "당신은 너무 오랫동안 보스로 군림해왔다"며, 그에게 다른 훈련병들의 군화 닦는 일을 시켰습니다. 실망한 브랭글은 "내가 기껏 군화나 닦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왔단 말인가?"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환상 중에 거칠고 무식한 어부들의 발을 씻어주시려고 엎드리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그들의 발을 씻기셨군요. 그렇다면 저도 그들의 구두를 닦겠습니다." 브랭글이 기꺼이 그들의 더러운 군화를 닦았을 때, 그는 예수님처럼 사는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였습니다. 이 일 후에 그는 구세군 최초의 미국인 감독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있었던 일로서, 예수님은 몇 시간 후에 닥칠 십자가를 앞두고서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나누십니다. 중동지역은 대부분 사막이라 모래가 많고, 또 그들의 신발은 끈으로 매는 샌들이기에, 유대인들은 나갔다 들어오면 반드시 발에 묻은 흙먼지를 씻었습니다. 우리처럼 방바닥에서 잠자고, 앉아서 식사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허리가 유연하지만, 이스라엘이나 서양처럼 의자나 침대생활 하는 사람들은 조금만 비둔해도 자기 신발 끈을 매거나 풀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선 하인이 주인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관례였고, 하인이 없으면 가족끼리 서로 발을 씻겨주고, 귀한 손님이 오면 손님의 발을 씻어주기도 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사들과 함께 아브라함에게 오시자 아브라함이 아룁니다.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창18:3-4).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손님접대 방법대로 하나님을 대접하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네 말대로 그리하라"(5절)고 하신 걸 보면, 이스라엘에선 손님 발을 씻어드리는 것이 손님접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는데 아무도 발을 씻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나서서 발을 씻어줘야 할텐데, 아무도 먼저 발을 씻어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번에 예수님이 유대 왕이 되실 텐데, 우리들 가운데서 좌정승, 우정승을 세우실 거다. 여기서 발을 씻는 자는 낮은 자이니, 내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나는 발씻음을 받는 사람이어야지, 발을 씻는 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식사하다 일어나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며, 또한 제자들에 대한 훈련이고 교육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4-15)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때로 봉사를 전도의 미끼로만 생각하지만, 봉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가치가 있습니다.


섬긴다는 말을 헬라어로 '디아코니아'로서, 서비스(service), 봉사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은 어원의 '디아코노스'는 '종'(從)이라는 뜻과 함께 권력자를 의미합니다. 로마서 13장 4절에서 '하나님의 사역자'를 '디아코노스'로 표현했습니다. 영어로 '미니스터'(minister)는 왕의 권위를 뜻하는 말로서, 섬기는 자가 왕이요, 다스리는 자입니다. 섬기는 마음속에 왕권이 있습니다. '예배'를 영어로 워십 서비스(worship service)라 하여,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 '디아코니아'요, 섬기는 것이 '예배'이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사람 대하는 것이 봉사입니다. 우리는 장관을 '어른 장'(長)에 '벼슬 관'(官)으로 '높은 벼슬'로 보는데, 영어는 장관을 '미니스터'(minister)라 하여 '섬긴다, 봉사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장관'이란 말은 지극히 관료적이고 지배하려는 의미가 있지만, '미니스터'는 아예 '섬기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봉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요13:12).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일은 단순히 제자들의 발이 더러워 발을 씻어줄 필요가 있다고 여겨 순간적으로 행한 사건만이 아니라, 이 모습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려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봉사할 때, 봉사를 받는 자는 그 봉사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지 못합니다. 봉사하는 봉사자의 모습을 통해 주님의 모습을 보고,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19세기 중국 대도시에서 수년간 사역하던 미국 선교사 헨리 포펜이 한번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 찾아갔습니다. 그곳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온화하심과 신실하심과 포용적인 사랑에 대해 설명하자,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으며, 미소짓기도 하고, 눈물 가득히 선교사를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선교사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들 중 한 사람이 "우리는 그 사람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말하는 예수님은 여기에 사셨댔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포펜 박사는 그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그리스도께서 1806년 전, 수천 마일 밖에서 사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은 "아니오, 그렇지 않소. 그분은 여기서 살고 바로 여기서 죽으셨소"하며 완강히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따라오시오. 그분의 무덤을 직접 보여주겠소"하며 앞장 서 걸어가자, 포펜 박사는 마지못해 따라갔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무덤에 한 의료선교사의 이름이 묘비에 적혀있었는데, 그 의료선교사는 그 외딴 마을에서 동료 선교사들에게조차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진실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다가 죽어갔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이 그 선교사를 예수님으로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섬김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봉사는 그 봉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계시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섬기며 봉사해야 합니까? 첫째, 우리를 섬겨주신 주님을 섬기며 헌신해야 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예수님은 우리가 영원히 섬겨야 할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시오, 우리의 왕이십니다. 주님이 우리 발을 씻어주시듯 우릴 섬겨주셨다면 우리도 주님을 섬기며 봉사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요?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시집가기를 거절하고 평생을 희생한 어느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동생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고, 주변 사람도 좀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했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녀는 오직 동생을 위해서만 살았는데,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자기가 사춘기시절 수혈을 받아야만 했는데, 특이한 혈액형이라서 피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마침 어린 남동생이 같은 피형이어서 자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혈이 끝난 후 이 남동생이 뜻밖에 의사선생님에게 이렇게 묻더랍니다. "선생님, 저는 언제 죽게 되나요?" 이 소년은 피를 뽑아주면 자신이 죽는 것으로 알고, 죽기를 각오하고 누님을 위해 헌혈했던 것입니다. 후에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누이는 그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저는 평생을 제 동생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결심을 실천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죽을 결심을 하고 수혈해준 동생을 위해 동생에게 빚진 마음으로 그 동생을 사랑하여 그를 섬기는 일에 헌신했다면 우리를 위하여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분을 섬기는 것이 지나친 낭비일까요?


둘째, 믿음의 형제들에 대한 봉사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예수님은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할 때, 우선 내 가까운 믿는 이웃에게 먼저 할 것입니다. 내 이웃, 내 형제가 굶주리고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멀리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고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족이란 반드시 자기 가정만을 의미하지는 않고 믿음의 가족까지 포함합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서로 좋은 것을 함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일흔의 나이에도 아랑곳 않고 주일학교에서 봉사하는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주일학교 예배가 끝났는데도 한 여자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오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함께 부모를 기다리는 동안 여자아이는 [곰돌이 푸우]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 책을 한 번 다 읽자, 여자아이는 또 한 번 더 읽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 책을 한 번 다 읽자, 여자아이는 또 다시 한 번 더 읽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세 번째 책을 읽어 주다 보니 아이 부모가 왜 이렇게 안 나타나는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아이 엄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이 엄마는 형제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곰돌이 푸우]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야 아이 엄마가 미안하다며 다가와 사과의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시는 모습을 보고 차마 방해하고 싶지가 않아서 서 있었어요. 아이 아빠가 2년 전에 죽은 뒤로 형제님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준 첫 번째 아저씨거든요." 아이에게 [곰돌이 푸우]를 읽어 준 나이 많은 성도의 이야기는 어린 소녀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형제들을 섬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셋째, 원수까지도 섬겨야 합니다. 30절을 보면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13:30)고 하여, 가룟 유다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팔 자의 발도 씻어주셨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7). 하나님은 세상 모두에게 빛을 비쳐주시며, 이 땅에 골고루 비를 내리십니다. 세상이 교회를 원망하는 것은 저들을 섬겨주기를 원해서 교회를 향해 비난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순교자'로 알려진 루마니아의 리처드 범브랜드 목사님이 한번은 기독교인 30명과 함께 어느 감옥에 갇혀 있는데 하루는 바로 자기를 잡아넣고 고문하던 비밀경찰 대위가 잡혀 들어오더랍니다. 그래서 "당신이 어떻게 여기를 들어오게 되었소?"하고 물었더니 "나도 기독교인입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무슨 영문으로 그렇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열두 살 난 어린이가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서 자기 아내에게 가져다주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웬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 어린이가 "저는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감옥에 갇히셨습니다. 어머니의 생일에는 꽃다발을 드려왔는데, 당신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다 잡아갔기 때문에 오늘은 드릴 수가 없어서 당신께 가져왔어요. 이것을 당신 부인께 갖다주세요"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건 왜?" "어머니께서 항상 가르쳐주셨어요. 원수를 사랑하라고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붙잡아간 원수인 당신을 내가 사랑해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 경찰은 어린이가 안겨준 그 꽃다발을 붙들고 아이와 함께 울면서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고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잡아간 사람까지 사랑한 그 사랑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면 어떤 자세로 봉사해야합니까? 첫째, 봉사는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 4절에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라고 했습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두르신 것입니다. 허리 꼿꼿해선 봉사가 안 됩니다. 나름대로 봉사했다고 했는데, 상대방에서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다면 내 봉사의 자세에 문제없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행여 오만한 자세로 강아지에게 부스러기 던져주듯이, 상대방을 무시하진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아무리 많이 도와줬더라도 상대방의 자존심 상하게 하면 상대방은 도움을 받고도 섭섭해합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겸손한 대통령일 것입니다. 트루먼이 스탈린과 처칠을 위한 환영 만찬에서, 유진 리스트 하사가 피아노 연주를 하였습니다. 리스트가 누가 악보를 넘겨달라고 부탁하자 트루먼이 자청하여, 일개 하사가 연주하는 동안 군 통수권자가 악보를 넘겨줬습니다. 후에 리스트는 아내에게 쓴 편지에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내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다니 한번 상상해 보시오. 우리 대통령은 그런 분이라오." 트루먼은 "나는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 절대 잊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트루먼의 전기 작가는 트루먼이 각료들을 그렇게 대했기에 "트루먼 주변 사람들의 충성은 전폭적이었고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이후로 트루먼 행정부에 속했던 이들 중 말로나 글로 그를 혹평하거나 비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댓돌 위에 서서 밑에 있는 사람들의 발을 씻기기는 어렵다"는 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내가 이미 사랑 받았다는 빚진 마음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부터 차례차례 제자들의 발을 씻어오시다가 베드로 앞에 오셨을 때, 베드로는 '우리가 먼저 발을 씻었어야 했는데, 예수님이 우리 발을 씻어주시다니 영 체면이 아니구먼'하는 생각에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요13:8)며 사양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절)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님께로부터 발 씻음을 받은 의식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봉사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봉사는 내가 먼저 받았다는 빚진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또 부모와 이웃과 형제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기에, 이웃과 형제와 자식들에게 다소나마 베푸는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그렇게 사랑과 정성을 쏟는데도 자식들이 이것을 알아주는지, 안 알아주는지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어머니가 자기에게 얼마나 잘 해 주셨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날 내 어머니가 내게 해주신 것을 생각하면, 내가 내 자식들에게 해주고 있는 것은 너무나 작고 하찮을 뿐이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는 부모에게 아무 받은 것도 없는데, 너희에게는 내가 이렇게 많이 준다'고 말하면 도리어 자식들의 반항만 불러일으킵니다. 봉사는 '나는 이미 받았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야합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발 씻음을 받았다는 마음이 있고야 남의 발을 씻어 줄 수 있습니다.


셋째, 봉사한 후에는 말이 없어야 합니다. 주님은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조그만 봉사를 하고서 내 입으로 자랑하고 떠벌려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게 되면 이미 상을 다 받아서 지불완료 됩니다. 히브리 속담에 '선물을 하고 말이 많으면 선물을 아니 함만 못하다'고 합니다. 우린 때로 애써 봉사고서 그것을 입으로 떠벌려 무효화시킬 때가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봉사가 허사가 됩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말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나는 오늘 하루 이런 것들을 추구할 것이다. 성공하면 감사할 것이고, 실패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것이다. 그리고 하루가 끝나면 베개에 머리를 눕히고 편히 쉴 것이다." 우리의 부족한 모습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종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본받아 겸손하고,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겠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여행하는 중에 어느 자매를 만났습니다. 그 자매는 자살하고 싶은 괴로운 심정을 테레사 수녀에게 고백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묻는 그 자매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자살하기 전에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세요. 딱 한 달만 내가 일하고 있는 인도의 캘커타에 와서 나의 일을 좀 도와주신다면 그 다음에 당신이 어떻게 해야 될지 말씀해 드리지요." 그 자매는 테레사 수녀의 말대로 캘커타 슬럼가에 가서 가난하고 병들어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돕고 섬겼습니다. 그들을 위해 몸 바쳐 일하다 보니까, 그녀의 마음에 삶에 대한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 자매는 그들을 돕고 섬기는데서 순수한 환희를 느꼈고, 한달 후에는 테레사의 다른 조언이 필요 없게 되자 그곳에서 일하면서 테레사의 좋은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부산시 서구 알로이시오기념병원 앞에서 송도탑스빌에 이르는 822m 구간 도로를 '장기려로'라고 명명되어 있습니다. 6.25 전쟁 후 먹지 못해서 아픈 환자들에게 장기려 박사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이런 처방전을 써주었습니다. "이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주시오. 원장." 병원이 원장의 이 지시를 거절하면 자신의 봉급에서 내주기도 했고, 밀린 병원비 때문에 퇴원을 못하던 환자에게 차비까지 주면서 "밤이 되면 내가 병원문을 열어놓을 테니 살짝 도망가시오"하며 열심히 살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1985년 정부는 장 박사에게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북한방문을 권하자, "남한에 실향민들이 3백만인데 어찌 나 혼자만 이산가족을 상봉하고 올 수 있느냐"며 사양했습니다. 장 박사는 1959년 국내 최초로 '간 대량 절제술'을 성공해 이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1968년 '건강할 때 서로 돕고 아플 때 도움 받자'며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열어, 우리나라가 세계 18번째,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도입한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그는 1979년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의 전도를 듣고 몇 명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료하는 것이 나의 사명으로 믿고 실천한 것뿐이다."


섬김은 우리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옵션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13:15).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존 파이퍼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아낌없이 해주신 것에서부터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해주어야 하는 것으로 옮겨 가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해주셨는가를 생각하고 이를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어주셨다면, 우리 또한 주님과 형제와 이웃의 발을 씻는 마음으로 그들을 섬기며 살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요한복음 13장 1~11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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