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님

사도행전 9장 26~31절

설교요약 :

"성령으로 정진하는 건강한 교회"
2019년 1월 6일 주일예배
사도행전 9 : 26 - 31 ; 시편 31 : 19 - 20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결심해도 사흘이 가지 못하는 뜻인 고사성어를 완성하라고 [작( )삼( )] 문제를 냈습니다. 정답은 '작심삼일'인데 한 학생이 '작은 삼촌'이라고 썼습니다. 선생님이 이유를 묻자, "작은 삼촌은 늘 담배끊는다고 결심해도 사흘을 못 간다"고 대답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담배끊기가 가장 쉽다. 나는 2백 번도 더 끊었다"고 했는데, 금연은 우리의 건강을 위해 유익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건강의 이상을 느끼고 병원에 찾아가서 체크를 했더니, 의사가 암에 걸렸다면서, 앞으로 두 달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사형선고를 합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선생님, 나는 이제 직장에서 출세도 했고, 그래서 돈도 벌었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도 받고 있습니다. 내겐 사랑하는 아내나 귀여운 자식들도 있고, 믿을만한 친구들도 있는데, 이 모든 걸 다 버리고 죽어야한다는 말입니까? 제 재산의 전부라도 드릴 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무엇이든 하라는 대로 할 테니 제발 제 병만 고쳐주십시오"라고 사정하자, 의사는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이제 아무 것도 없습니다. 건강이 없어 생명을 잃게됐고, 생명이 없으니, 당신의 가족도, 직장도, 재산이나, 명예며 지식까지도 이제 당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건강이란 다른 것과 함께 하나 더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전제가 되는 필수불가결의 절대 조건입니다.


이 땅에 계시던 예수님의 모습은 분명 하나의 의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의 아픔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시며 찾아오는 모든 환자들의 질병을 치료해주셨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보면, 아이들이 공부 못한다고 부모들이 속상해 하지만, 이 아이가 중병에라도 걸리면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하는 것이 대다수 부모들의 소원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세상에 있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간절히 바램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모든 교회의 건강이 아닐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시대 많은 교회는 건강을 잃고 깊은 중병에 걸려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소위 한국의 초대형 교회들이 언론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많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세상에 노정했습니다. 매머드 호화 성전 건축, 담임목사직 부자 세습, 교회 재정 운영의 불투명, 성추행 등등... 그런가 하면 중소형 교회는 출산율의 감소로 교회학교 학생이 급감하여, 교회학교가 없는 교회가 과반수에 이르고, 장년부 신자가 많은 교회도, 청소년과 어린이 부서의 숫자가 1-3% 미만인 기형적 교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교적 안정된 교단인 우리 통합총회에 속한 교회 중에도 교인 50명 이하 교회가 46%, 200명 이하 교회는 80%가 넘어, 교회 존립 자체에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병리현상은 왜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1983년 템플턴 종교상 수상 연설에서 솔제니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어르신들이 러시아에 닥친 큰 재난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은 게야. 그러니까 이런 일들이 일어나잖아?' 그 후로부터 나는 거의 50년 간을 러시아혁명사를 연구했는데, 6천만이 넘는 이 백성들을 집어삼킨 이 파괴적인 혁명의 주요 원인을 정확히 표현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 말을 반복하는 것 외에 더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은 게야. 그러니까 이런 일들이 일어나잖아?'" 오늘날 초대형 교회들 중에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의 병리현상도 그들이 하나님을 잊었거나,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망각하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상실한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리처드 하버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맨 처음 교회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친밀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관계를 가졌다. 이 관계는 그들과 그들 주변의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 다음 교회는 그리스로 건너가 하나의 철학이 되었다. 나중에 교회는 로마로 넘어가 하나의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 교회는 유럽으로 퍼져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나의 기업이 되었다." 미국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한국교회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성공주의 철학으로 인해, 교회까지도 기업의 요소가 침투하여 물량주의와 성장 제일주의로 변질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사유화하거나 기업화하려는 모습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신학자는 "천 명 이상 교인이 모이는 교회의 목사는 자기 교회 주인을 예수님이라 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는데, 이 시대 교회 중에는 성공주의와 번영신학에 매몰되어 외형적인 성공에 매달리면서,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망상에 빠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몇몇 초대형 교회는 담임목사가 은퇴하면서, '내가 어떻게 성장시킨 교회인데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느냐?'는 생각으로 자식에게 세습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해 홍정길 목사님은 "어떻게 감히 '내가'라고 말하느냐? 모든 것이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더냐?"고 일갈하였습니다. 소위 목회에 성공했다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 되신다는 생각을 잊고 교회를 사유화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둘째, 교회가 내부 문제에 몰두하면서 나가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 사랑을 나타내는 일에 소홀하여, 운동량이 떨어짐으로 둔화와 마비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반 기독교적인 정서로 인하여, 교회는 교회 성장기에 그토록 열심히 하던 축호 전도나, 노방전도가 자취를 감춰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가 최일선에서 담당하던 사회봉사도, 국가의 복지정책 강화로 인한 입지의 축소와 함께, 사회적인 반 기독교 정서로 인하여 크게 위축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10여 년 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사회복지시설 중에 장애인복지 시설의 52.4%, 아동복지 시설의 78.4%, 노인복지 시설의 43.6%, 정신요양 시설의 52.7%를 교회나 기독교인이 운영해왔습니다. 그리고 수재의연금(1996-2002년)의 68.8%, 대북 인도적 지원(2001-2003년)의 51.1%, 해외 인도적 지원(1996-2002년)의 64.9%를 개신교가 담당했습니다. 2002-2004년 사이 헌혈자의 91.6%, 골수기증자의 41.2%, 장기기증자의 44.3%가 개신교인이었습니다. 재소자 자매결연의 52.3%, 불우 수용자 및 가족 돕기의 59.6%가 개신교인이 감당했고, 호스피스 기관의 85.6%가 개신교인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태안 앞 바다 오염제거 자원 봉사자의 80%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교회나 사회복지 시설의 운영이 부실했거나 미숙하여, 일정 기준에 미달한 곳도 있어, 이런 일이 비난당하면서, 이런 교회나 복지시설이 범죄집단처럼 매도됨으로, 그동안 헌신적으로 봉사하던 단체마저 의욕을 잃고 뒤로 물러서 버렸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점점 사회봉사를 소홀하게 되고, 해외선교에 관심을 쏟게 되었는데, 이 해외선교마저, 2007년의 샘물교회 선교단의 아프가니스탄 피랍으로 사회적인 비난이 쏟아지자, 개척선교는 멀리하고 땅 밟기 정도로 그치며, 교회가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몸으로 봉사하는 열정적인 사역은 점점 사라지고, 그저 교회 안에만 웅크리면서 문화사역이나 관심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교회 내부에만 눈을 돌리다 보니까, 교회내의 이런저런 문제에만 집중하면서 많은 교회가 분열의 몸살을 앓게 되었습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군대의 능력은 식당에 앉아서 밥을 먹는 사람이 몇 명인가에 달려 있지 않고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듯이 교회의 아름다움도 몇 명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보내느냐에 달려있다." 천국이 이 땅보다 좋음에도 아직 우리를 세상에 두시는 뜻은 믿지 않는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라고 우리를 세상에 두셨는데, 밖에 나가 일하진 않고 교회 안에만 웅크리고 있어, 근육이 없는 허약한 체질이 돼버리고 만 것입니다.


셋째, 개인주의의 심화로 성도간에 교제와 사랑이 식어지면서 한 몸 안에서 원활한 순환작용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경화현상입니다. 릭 워렌은 "병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건강은 '우리'로부터 시작한다. 치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는데, 이 시대는 '나' 밖에 모르는 개인주의로 인해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는 '가나안 신자'가 무려 19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교회학교살리기운동본부장 김성기 목사는 "건강하지 않은 교회운영에 실망해 교회를 떠난 신자를 적지 않게 봤다. 하지만 가나안교회를 찾기보다 좋은 기성교회를 찾아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을 합하는 것이 옳다"고 조언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스데반을 죽이고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믿는 이들을 잡아오려고 다메섹에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 회심합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 다메섹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다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하자 다메섹을 탈출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사울의 변화를 믿지 못하고 아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데, 바나바가 그를 적극 변호하며 변화된 것을 증언하자 교회는 받아들입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도 힘써 전도하자,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하니, 교회는 그를 가이사랴를 거쳐 다소로 보냅니다. 이러면서 복음은 더욱 힘있게 전파되고,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있는 모든 교회가 박해를 이기고 평안해집니다.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을 경외함과 성령의 격려로 성도들이 늘어가며, 하나님의 나라가 힘있게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회가 참되고 건강한 교회인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 정신이 건강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교회입니다. 31절 '주를 경외함과'를 새번역 성경은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12:4-5)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기독교의 정신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 경외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면 너그러운 자선가는 될 수 있어도 크리스천은 아닙니다. 매튜헨리는 "하나님의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듯이 하나님의 진노도 아침마다 새롭다"고 말했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진노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의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크고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감히 하나님의 성호조차도 입에 담을 수 없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라는 성호를 부르지 못하고, 대신 '주님'이란 뜻의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혹시라도 하나님의 성호를 발로 밟는 일이 있을까봐, 신문이나 책 속에 '하나님'이란 글자가 인쇄돼 있을지 몰라서 인쇄물을 밟거나 넘어가지 않을 만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그들 신앙의 핵심입니다.


C.S.루이스는 옛날 사람과 현대인들의 가장 큰 차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현대인에 비교하여 훨씬 더 무지했지만, 신에 대하여는 깊은 경외감이 있었고, 신 앞에 언제나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았다. 고대인들에게 신은 심판자였고, 인간은 변함 없이 피고였다. 반면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지혜로워졌지만, 신을 향한 원망심을 갖고 신을 피고석에 세웠고, 이제 인간이 오히려 심판자가 되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흔히들 죄를 무서워할 줄 모르고 실패와 질병만을 무서워하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실패나 가난보다도 불신앙과 죄악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수상 동조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히틀러가 그와 함께 군대를 사열하면서 "독일군은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군대"라고 자랑하자, 일본수상 동조는 "우리 일본군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그 교만으로 인해, 일본은 역사상 유례 없이 원자탄으로 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합2:20). 부모님이 계시면 말소리를 죽였는데, 성전에서 소리지르는 일은 매우 불경한 태도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2:19)라며, 하나님께 두려움 없는 죄를 책망했습니다.


믿음 좋은 집사님이 교회학교에서 열심히 봉사했는데, 그 덕분인지 사업이 번성하자 그는 점점 봉사를 소홀하고 결석도 잦아져, 목사님이 그에게 신앙생활을 추스르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을 핑계로 그 권고를 따르지 않고 나중엔 출석하는 날보다 결석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출장 중에 집에 불이 나서 아내와 아이가 불에 타 숨졌습니다. 두개의 관을 놓고 장례를 치르면서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편을 택하겠습니까?" 한참 생각하던 집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예, 하나님을 두려워하겠습니다." 하나님 한 분 두려워하면 다른 것은 두려울 게 없습니다.


둘째,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함으로 근육이 단련된 교회입니다.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다메섹에 와서 아나니아로부터 눈이 밝아지자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행9:20)했습니다. 그러다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키자, 밤중에 광주리에 달아내려 그곳을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와서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행9:29) 했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결코 가만히 있지 않고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A. 토저는 현대 사회가 자본주의로 인해 물량주의, 상업주의가 교회에 물밀 듯이 밀려들어와 신앙의 순전성을 오염시키는 것을 경고하며,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앞에서 나의 신앙은 진짜인가? '행복'은 추구하지만 '성화'는 추구하지 않는 가짜에게, '명예'는 추구하지만 '십자가'는 지지 않는 가짜에게!" 토저는 성도들이 물질적인 안정을 삶의 최우선순위로 추구하면서 '들풀 신앙'을 상실하고 '온실'의 나른함 속에 소금의 맛을 잃었다며 이렇게 고발합니다. "진짜는 험한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진짜는 솜사탕 복음을 거부하고 가시면류관 복음을 믿는다. 진짜는 주님의 '일'보다 '주님'에 우선 순위를 둔다. 진짜는 행복보다 거룩을 열망한다. 진짜는 신앙의 기본에 충실하다." 현대인의 건강의 최대 적은 움직이지는 않고 먹기만 하여 비만에 걸림으로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듯, 우리의 영적인 병도 머리로만 믿고 움직이지 않는데 있습니다.


어느 공동묘지 관리인은 수년동안 매주 어떤 여인으로부터 죽은 아들 무덤에 꽃다발을 놓아달라는 편지와 우편환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여인이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찾아왔습니다. "내가 지난 몇 해 동안 매주 아들의 무덤에 꽃을 놓아달라고 당신에게 부탁했는데, 의사는 내가 앞으로 몇 주일 더 못 살 거래서 오늘은 직접 꽃다발을 놓으려고 왔습니다." 관리인은 결심하고 말했습니다. "부인, 무덤의 꽃은 며칠만에 시드는데 이곳엔 그 꽃을 볼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병원의 환자들은 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들은 꽃을 볼 수 있고 향내 맡을 수도 있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부인은 한마디 말없이 가버렸습니다. 관리인은 부인의 충격을 받고 몸에 이상이 올까 걱정했는데, 몇 달 후 그녀는 운전사 없이 직접 차를 몰고 와서 말합니다. "그동안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찾아 꽃다발을 전해주느라 무척 바빴습니다. 당신 말이 맞았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그들은 몹시 기뻐하고, 그 모습을 보니까 내게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의사는 어떻게 내가 이렇게 다시 건강해졌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압니다. 지금 나는 내가 해야할 일을 찾았거든요." 일하는 사람에게 건강도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성도간에 아름다운 교제로 혈액순환이 잘되는 교회입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행9:27). 아무도 사울의 회심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자, 바나바가 그를 변호하고 그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여 교회가 그를 받아들이고, 그는 예루살렘에서도 전도하니,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하자 교회는 그를 피신시킵니다.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행9:30). 건강한 몸은 혈액이 잘 순환하듯, 건강한 교회는 모든 지체가 유기적으로 서로 연합하고 서로 돌보는 교회입니다.


맑은 호수에 두 물고기가 오순도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물고기에게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 호수에 나 혼자 살면 먹이도 풍부하고 훨씬 자유로울 것이다." 결국 이 물고기는 친구를 물어 죽이고 말았습니다. 며칠 후부터 호수는 물고기 죽은 것으로 오염되어 물 전체가 썩기 시작하여 이 물고기도 썩은 물을 먹고 죽고 말았습니다. 욕심이 가져온 자업자득이었습니다. 나 혼자만 살려는 이기심은 끝내 자 자신까지도 잘살지 못하게 만들고, 서로 돌아보면 모두가 살게 됩니다.


오래 전에 우리 교회에 와서 간증을 했던 세브란스 병원 원목실의 김복남 전도사와 인터뷰한 기사가 지난 해, 국민일보에 실렸습니다. 김 전도사는 세브란스재활병원에서 근무할 때,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고 의수를 한 환자의 이 고백을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저는 아내가 밥을 떠 먹여줘야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 가서도 바지를 내리고 뒤처리까지 다 해줘야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아내를 안아줄 수 없는 몸이 됐어요. 두 팔이 있었을 때 자주 안아주지 못한 게 많이 후회돼요. 온전한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고, 자신의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고, 배우자가 '여보'라고 부르고, 자녀들이 '엄마' 또는 '아빠'라고 불렀을 때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고 있는지요? 자신에게 건강한 팔이 있다면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껏 안아주길 바랍니다." 김 전도사는 이들이 바라는 기적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자신 역시 소중한 것을 잃은 뒤에야 후회했던 사람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안아줄 손과 팔이 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생 남매를 둔 40대 크리스천 주부가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의사는 고통스럽지만 방사선치료를 받으며 조금이라도 더 살던가, 아니면 불치병이니 편안히 요양하며 덜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던가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이 분은 기도하며 엄마와 아내로서 무엇이 최선일까 생각하다 방사선치료를 받기로 결심하고서 자녀들에게 쓴 감동적인 편지가 가정사역 전문잡지에 실렸습니다. "엄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어 죽음이 준비돼 있기에 더 이상 이 땅의 삶에 대한 미련은 없다. 그럼에도 엄마는 방사선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너희들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너희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어 너희에게 엄마를 필요로 할 때 내가 너희들 곁에 있어 주기 위해서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나는 너희들이 정말 필요했던 시간에 엄마가 너희들 곁에 있었다는 그 기억을 위해서 나는 이 질병과 더불어 싸우기로 결심했다." 이 분은 자녀들에게 축복이 되기 위해 자신이 고통을 선택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 세상에 소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C.S. 루이스는 "인간의 영혼의 건강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에 비례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교회를 교회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하신 대로,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자라나는 세대를 양육하고, 성도간에 따뜻한 피가 잘 순환하도록 교제를 활성화해야 하겠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시31:19-20).

사도행전 9장 26~31절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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