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9 72회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교회"
2018년 9월 9일 주일예배
에베소서 1 : 20 - 23 ; 시편 122 : 6 - 9
한 역사학자가 비상한 기억력으로 '갑오경장?'하면 '1894년' 정도는 기본이고, '프랑스 혁명?'하면 '1789년 7월14일'하고 정확하게 외웠습니다. 그 날 밤에도 사람들 앞에서 잔다르크 1412년 1월 6일 출생, 1431년 5월 28일 사망, 명성황후 1851년 모월모일 출생, 1895년 모월모일 사망하며 읊는데 참석자 모두 그의 기억력에 놀랐습니다.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리자 그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화기에 대고 하는 말이 "응? 당신이야? 안 들려 크게 말해봐! 뭐라고? 오늘이 당신 생일이었나?" 정작 자기 부인의 생일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교회 생일입니다.
1956년 9월 9일 선우희 전도사님에 의해 여수동 개울가에서 시작되어, 올해 62주년을 맞았습니다. 그 후 김재중 전도사님과 이명국 전도사님, 함성한 원로목사님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러 7백여 성도들이 탄자니아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사피나 초등학교를 세우고, 세계 14곳의 선교지를 후원하며, 스무 곳 가량 농어촌교회와 개척교회를 지원하고, '해비타트 운동', '장기 기증운동' 등, 사회사업기관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동문교회가 좀더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독일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이거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거 신제품인가요?"라고 묻는데, 한국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이 물건 진짜인가요?"를 묻는다고 합니다. 얼마나 '가짜'에 속아왔으면, 이렇게 '진짜'인지를 물을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만 진짜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요즘 잘못된 이단교회와 사이비 성직자나 교인들이 있어, '저 교회가 진짜 교회인가?' '저 사람이 진짜 크리스천인가?'를 속으로 묻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독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당시 반상의 차별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상민들에게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전파하여, 백정이 장로가 되고, 그 백정 아들이 의사가 되고, 왕손이 예수 믿고 자기 말을 끄는 마부에게 '형님'이라 부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문에 기독교는 사람의 인정을 받았고, 교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존귀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한국교회는 세상의 비난과 공격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2천년 역사를 통한 교훈은 기독교는 너무 세상의 평가와 기준에 영합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교학자 노만 그럽은 '세상은 언제든지 교회에 대해 박수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는 말합니다. "교회는 세상에 소망을 주어야합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를 향해 '이대로 끝날 순 없잖아요'라고 말합니다. 전쟁과 기아, 경제 불황, 개인적 고통과 환난을 겪는 우리 상태가 그대로 끝날 순 없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당신의 희망의 미래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교회에 대해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1:22-23). 첫째,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것입니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교회에 생명을 부여하시며, 교회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교회의 주인이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철저히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도 그리스도의 주권이 훼손되거나 침해돼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어떤 권력자나 재력가도 교회 머리가 될 수 없고, 오직 교회의 주인이 되신 그리스도만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주후 330년,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던 로마인들은 그 도시를 세운 콘스탄틴 대제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그리스에서 아폴로 상을 가져다가 아폴로의 머리 부분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콘스탄틴 대제의 두상을 조각해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교회에서도 이처럼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밀려나시고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있습니다. 교회에 어떤 공을 세웠거나, 많은 성도들로부터 지지를 받는다고 해서, 스스로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자리를 자치해서는 안 됩니다. 뉴욕의 리버사이드처치를 록펠러가 건축하여 봉헌하면서, 교회 어디에도 자기 이름을 새겨 넣지 않았고, 또 교회 어떤 문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교회를 봉헌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되게 하는 자세입니다.
둘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23절),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어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기능을 통해 한 몸으로서 일치성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한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한 몸이 아닌 것처럼, 서로 분리하려 하거나, 다른 지체를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나와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인 것처럼, 형제나 이웃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임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지체는 몸을 떠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팔이 몸에 붙어있기가 싫다고 몸에서 떨어져난다면, 이 팔이 살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몸의 어느 지체든 몸에서 떨어져나가면 그것으로 그 지체는 죽고 말 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인 성도도 교회에서 떨어져나가면 그 영혼은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체는 지체간에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공동운명체입니다. 다리가 아픈데 팔이 혼자 좋아할 수 없고, 머리가 아픈데 배가 속 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손톱을 깎으면서, 왼손은 오른손이, 오른손은 왼손이 깎아주고 나서 날카로운 손톱 끝을 다듬는데, 가만히 보니까 왼손 손톱은 오른손으로 손톱 다듬기를 움직여 다듬는데, 오른손은 왼손으로 손톱 다듬기를 쥐고 오른 손이 움직이며 다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깨달은 것이, 오른손이 좀더 능숙하다고 왼손은 가만히 있고, 왼손 손톱 다듬을 때나 오른 손톱 다듬을 때, 모두 오른손이 움직이면서도, 오른손이 전혀 불평하지 않고 당연한 듯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아, 이것이 한 몸이라는 것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 몸이란 서로 손해와 이익을 따지지 않고, 아무런 불평 없이 힘있는 쪽이 약한 쪽을 자원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셋째, 교회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자의 충만이라고 말씀합니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23절). 이 말씀은 그리스도는 만물 가운데 계셔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데,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일을 완성케 하는 도구가 된다는 말입니다. '충만'은 헬라어로 '플레로마'인데, 이 말은 능동적으로는 충만케 하는 역사요, 수동적으로는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가 이것을 풍자적으로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신부 없는 신랑, 가지 없는 포도나무, 몸 없는 머리, 이것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신랑 되시고, 포도나무 되시고, 머리가 되십니다. 결국 충만은 사랑하는 신부와 함께 하는 신랑,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가 있는 포도나무, 온전한 인격체를 지닌 몸의 머리입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세상을 충만케 하는 생명력입니다. 이것은 우주적이요 절대적입니다. 충만케 하는 역사가 교회를 통하여 확장되어 나가게 됩니다.
여러분은 역사를 어떻게 보십니까? 신앙적인 눈으로 보면, 2천 년 역사 속에 많은 나라, 많은 세력들이 교회를 말살하려고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회를 핍박하던 세력들은 다 무너졌고, 모두 망하고 말았습니다. 1917년 레닌은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을 일으켜 천년이 넘도록 지속돼오던 러시아교회를 모두 문닫아 버리고 그곳을 공산당 당사와 노동자 숙소, 심지어 스케이트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공산당지도자였던 사람들이 지금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 문을 닫았더니 다른 모든 문도 닫혀버렸다." 교회 문을 닫으면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의 문, 축복의 문, 은혜의 문을 닫아버리십니다. 북한을 보더라도 저들이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의 교회를 다 폐쇄한 결과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가난해졌습니다. 성경은 엄히 경고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7).
반대로 부족한 가운데도 교회를 높이고 교회를 영화롭게 한 사람이나 나라는 부흥하고 영광을 누렸습니다. 어느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교회가 부흥될 때 나라도 부흥되고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교회성장과 경제성장률이 비례했습니다. 교회가 부흥될 때 경제도 부흥되고, 교회성장이 침체되면 경제도 침체되어, 교회를 문닫으면 그 나라도 망하고 맙니다. 청교도들이 처음 미국에 들어가, 맨 처음 교회부터 세우고, 그 다음 학교를 세우고 자기 집을 세워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최고의 철학자이며, 정치가 드 토크빌이 수년 동안 미국에 머물며 관찰하고 연구하여 고전이 된 책 [미국의 민족주의]의 서문에서 말합니다. "미국은 위대하고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것은 광대하고 비옥한 땅이나, 그 풍요한 강과 숲, 혹은 우수한 교육제도와 민주적인 의회제도 때문이 아니다. 내가 감동한 것은 미국의 교회들이다. 미국 교회들은 생동력이 있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강단의 설교들은 감동적이며 교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열심히 봉사한다. 교회들이 이처럼 살아 움직이는 한, 미국의 위대함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의 교회가 침체하면서 그 위대하고 부강한 나라도 침체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끼친 큰 영향 중 하나가 한글 보급입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선교사들이 와서 성경번역과 보급에 힘썼습니다. 1887년 [성경번역위원회]를 설립하여 1900년에는 신약 1910년에는 구약을 번역하여, 한글과 성경보급에 힘써, 한글을 깨우쳤습니다. 또한 미션스쿨에서 배운 사람들이 독립운동이나, 민중계몽에 힘써, 우리나라에 참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일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콜게이트는 치약, 칫솔, 화장품 등으로 세계적인 기업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장남인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자립하라며 집에서 쫓아내어, 울며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배고픔에 지친 콜게이트에게 어떤 친절한 사람이 격려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약 내 말을 따르면 반드시 네 이름은 빛나고, 너는 축복의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 네 형편이나 처지를 바라보지 말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고, 반드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또 네 소득의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고, 교회생활에 충실하며, 항상 남을 섬기는 자세로 살아라. 혹시 네가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더라도 겸손히 행하고 섬기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도시로 간 콜게이트는 양초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은행에 [예수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하여 저축하며, 주일이면 꼭 십일조를 준비하여 교회에 가서 경건히 예배하며 성실히 봉사했습니다. 양초공장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모든 사람을 돕는 자세로 일했더니, 평소 그를 신임했던 공장 주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공장을 운영하게 되어 사업이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그는 교회 사랑하기를 자신보다 더하여 교회에서 청소를 도맡아 하며, 주일학생 하나하나를 섬기고 돌보며 아름다운 본을 보여,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교회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완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의 집이라는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할 때,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쓸데없이 교회를 비난하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엄히 다스리십니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고 꾸짖으십니다. 교회를 영화롭게 하고, 교회를 높이는 것이 곧, 주님을 영화롭게 하며 높이는 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모이기에 힘써 가까이 해야 합니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시122:4). 시편 84편도 말씀합니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84:4-5). 교회 출석 잘해야지 출석이 뜸해지면 시험에 빠집니다. 교회에 나오면서 은혜 받고, 교회에 나와서 깨닫고 사업도 하고, 깨닫고 화목도 하고, 깨닫고 결심하고, 원수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 졸다가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집에서 편히 낮잠이나 자는 것이 낫다고 하지만, 졸아도 하나님께 나와서 졸아야합니다. 어떤 사회학적인 조사에 의하면, 교인이 넉 달만 교회에 안나오면 완전히 불신자(Non Christian)가 돼버린다고 합니다. 하루라도 안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방주에 들어가야 구원받는 것이지, 내가 의로워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느낌이 있는 이야기]라는 책에 실린 내용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들은 모두 영리했고, 할머니가 색다른 질문에는 대답 못한다는 것을 알고 놀릴 속셈으로 말했습니다. "할머니, 요즘도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세요?" "물론 나가지." "교회에 가서 뭘 배우세요? 지난 일요일에 들은 내용을 이야기해 주세요." "잊어버렸어. 이젠 나이가 많아 기억력이 점점 없어지는구나. 내가 기억하는 건 그 말씀이 매우 감명 깊었다는 것뿐이란다." "그럼 할머니, 교회에 나가면서 아무 것도 얻는 게 없다면 교회에 나갈 필요가 없잖아요?"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얘들아 나랑 부엌에 좀 가자"며 부엌으로 데려가 벽에 걸려 먼지가 쌓인 망태기를 손자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얼른 냇가에 가서 여기에다 물을 담아 오너라." 손자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할머니, 놀리시는 거죠? 망태기에 물을 어떻게 담아 와요?" "아무 말도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해라. 네게 보여줄 것이 있어서 그래." 손자는 얼마 안 되어 물에 흠뻑 젖은 망태기를 들고 왔습니다. "보세요. 할머니, 망태기에 물을 담을 수 없잖아요."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 망태기가 얼마나 깨끗하고 말끔해졌는지 보렴. 너는 얻을 게 없으면 교회가 나가지 않는 게 낫다고 했지? 하지만 이 망태기에 물은 담지 못했지만 이렇게 깨끗해졌지 않니."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들은 말씀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영혼이 깨끗해지고, 또 생명의 약식이 우리에게 공급되어, 이를 통해서 우리의 영혼의 건강이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내게 붙어있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인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속하여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진액을 받아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둘째,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122편 6절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교인 중에는 두 종류의 교인이 있는데, 한 종류는 목사를 위해 기도해주는 교인이고, 다른 한 종류는 목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는 교인이랍니다. 여기서 '목사로 기도하게 하는 교인'이란 목사를 힘들게 하여 기도할 수밖에 없게 하는 교인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염려되어, 교회로 하여금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게 하는 교인이 되지 말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교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교회가 평안하고서야 내 생활도 평안할 수 있지, 교회가 평안하지 못한데, 내 생활이 평안할 수는 없습니다.
19세기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교회는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던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테버나클 처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스펄전 목사님에게 "어떻게 그토록 능력 있는 목회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목사님이 이 사람을 강단 밑에 있는 기도실로 안내하여 가보니 2백 명이 넘는 기도 용사들이 목사님의 말씀선포와 목회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나의 목회의 원동력은 이 성도들의 중보기도 덕분입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교회의 승리는 사람의 능력이나 지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중보기도로 인한 것입니다.
셋째, 교회를 사랑하여 받들어 섬겨야합니다. 시편에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122:6b)고 말씀합니다. 여기 예루살렘이란 하나님의 교회를 뜻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섬겨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비난하고 욕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아끼고 사랑해야합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얼마나 사랑합니까?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7:13). 이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이분이 청년시절, 어느 여름에 비가 아주 많이 왔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새벽기도 하러 집을 나서자 부모님은 비가 많이 오니 가지 말라고 말리시는데, "비가 온다고 중단하다니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하고는 낡은 우산을 쓰고 그 비를 다 맞으며 교회에 갔더니 비가 와서인지 그 날은 교회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에서 한 사람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처럼 대성통곡하며 우는데, 무슨 큰일을 당했나 싶었습니다. 놀라서 가까이 가보니 교회 장로님이었습니다. 그분이 우는 사연이, 새벽에 나와보니 예배당에 비가 새어 그릇을 받쳐놓았는데 어찌나 비가 많이 오는지 그 빗물이 넘쳐 온 예배당에 물이 번졌습니다. 장로님이 어찌할 도리가 없어 거기 앉아 목을 놓아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불충하고, 게을렀습니다. 우리 집만 보살피고, 교회는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죽일 놈입니다. 나쁜 놈입니다"하고 엎드려 울더랍니다. 여러분, 교회의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으로 받아들이십니까?
이 시대 한국교회는 세상의 비난으로 크게 위축되어 있고, 또 주눅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비난하라! 나 역시 나를 비난한다. 그러나 내가 따르는 길이나 그 길이 어디에 있느냐고 내게 묻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하노니, 나를 비난할 일이지, 내가 가려는 그 길을 비난하지는 말라! 만약 내가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술에 만취해서도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면, 단순히 내가 휘청거리며 걷고 있다고 해서, 그 방향이 조금이나마 달라지겠는가?"
스코틀랜드를 영적으로 부흥시킨 존 낙스가 뛰어난 강해 설교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프랑스 군대가 스코틀랜드 마을을 침공해 왔습니다. 카톨릭과의 갈등으로 스코틀랜드 사람이 추기경을 살해하자, 그 보복으로 마을을 공격하여 종교 지도자들을 잡아갔습니다. 존 낙스도 잡혀서 19개월이나 쇠고랑을 찬 채 배에서 노를 젖는 노예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1548년 여름, 그가 탄 배가 그의 고국 연안을 항해하는데, 그는 이질이나 장티푸스에 걸려서 거의 죽게 되자, 쇠고랑에서 풀려나 선창에 버려졌습니다. 그래서 죽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는데, 한 친구의 부축을 받아 파도 너머로 보이는 성 앤드류 마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가 처음으로 설교했던 교회의 종탑을 바라보자, 하나님의 전, 교회에 대한 사랑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고픈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기도한 후 부축하는 자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병들어 약하게 되었지만, 다시 그 교회에서 내 입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전까지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 결국 그 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건강이 회복되고 자유의 몸이 되어 다시 설교했습니다. 질병의 고통 중에도 성전을 사모하여 기도한 것이 응답된 것입니다.
이어령씨가 세례 받고 교회에 나가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배가 고프면 어디에 갑니까?" "식당에 가죠." "뭔가 지적인 갈증을 느낄 때는 어디 갑니까?" "도서관 가죠." "몸이 아프면 어디에 갑니까?" "병원에 갑니다." "심심하고 마음이 고플 때에는?" "노래방도 가고 극장가서 영화보고 그러죠."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먹어도 배고프고 노래를 불러도 가슴이 풀리지 않을 때는, 영혼이 목마르다할 때에는? 식당이나 극장, 그리고 도서관으로도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교회에 갑니다." 세상이 교회를 비난하고 우리의 신앙을 모독해도, 우리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통해 구원을 받고, 그분의 말씀으로 위로와 새 힘을 얻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시23:6 공동번역). 교회를 사랑하여 가까이 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사랑으로 섬길 때, 주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시122:6, 9). 이 귀한 축복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