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3 69회
"성탄에 드린 이 사람의 헌신"
2018년 12월 23일 성탄주일
마태복음 1 : 18 - 25 ; 이사야 7 : 14
소파에 앉아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 남편을 보고 아내가 묻습니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어요?" 그러자 남편이 말합니다. "우리가 연애할 때 당신 아버지가 내게 만약 결혼하지 않으면 강간죄로 고소해서 20년을 옥살이시키겠다고 한 말이 기억나지?" "그런데 왜요?" "내가 감옥에 갔었더라면 오늘 출소하는 날이구먼." 감옥 갈걸 그랬나 봅니다. 어느 교회에서 아나바다 시장에 안 쓰는 물건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여전도회회원들이 모두 자기 남편을 데리고 나왔더랍니다. 피장파장입니다.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남녀 사이가 요즘은 '혐남'과 '혐녀'로 몸살 앓고 있습니다.
2012년에 타계한 강영우 박사는 시각장애인으로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로 6년 동안 일하면서 미국의 5400만 장애인을 대변하는 직무를 수행하며 장애인의 자립과 권리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는 부인 석은옥 여사에게 남긴 편지에서 "50년 전, 햇살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예쁜 여대생 누나의 모습을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주신 날개 없는 천사였습니다. 앞으로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에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당신을 향한 감사함과 미안함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더 오래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아내를 '나의 어둠을 밝혀주는 촛불'이라고 표현한 그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라는 말로 세상에서 마지막 인사를 남겼습니다. 석은옥 여사가 없었더라면 강영우 박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그녀의 남편 미우라 미츠요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폐결핵과 척추카리에스로 8년 동안이나 병상에 누워 절대안정을 취해야했고, 때로 각혈도 했습니다. 그녀는 사귀던 애인이 죽자 머리맡에 항상 그의 사진과 유골상자를 놓아두었고, 그녀 주위엔 여러 명의 남자친구가 있었으며, 얼굴이 그리 예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보다 두 살이 적은 미우라 미츠요는 공무원으로 핸섬하여 여러 여성으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들었던 남자인데도, 그는 다른 이를 마다하고 5년 동안 매주 아야꼬를 문병하며 그녀를 계속 격려해주었습니다. 이런 사랑과 정성으로 5년 만에 아야꼬는 겨우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미츠요가 35세, 아야꼬가 37세 되던 해, 마침내 그들은 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전날까지 신열이 있던 아야꼬는 신혼여행도 포기한 채 남의 집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단칸방에서 두 사람은 신혼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아야꼬의 인간적인 결점과 허약한 신체, 남의 입에 오르내리던 연애까지 모두 포용한 미츠요의 사랑으로 인해, 미우라 아야꼬는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미츠요가 없었더라면 작가 아야꼬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을 하기 전에 마리아가 임신한 것이 나타납니다.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요셉이 알았을 때, 요셉으로서는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사랑하는 약혼자와 결혼식을 치르기까지 아름답게 순결을 지켜왔는데, 신혼의 단꿈을 즐기기 전에 난데없이 약혼녀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아기를 임신했다면,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이런 경우에 아무런 고통이나 갈등이 없다면 그는 자기 약혼녀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고, 설사 약혼녀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로 치를 떨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는 엄청난 사건을 위하여,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고용하여 쓰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성탄을 위해 쓰신 사람 중에 뺄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구약의 선지자들입니다. 구약성경에는 16명 이상의 선지자들이 메시야 탄생을 계시 받고,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총 456회나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언자들을 성탄을 위해 미리 고용하여 쓰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귀하게 쓰신 사람이 마리아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여인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셔야했기에 마리아의 헌신이 필요했습니다. 대단히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으나,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라며, 그 엄청난 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희생이나 생명을 바친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부터 다가올 그 엄청난 오해와 비난과 괴로운 문제들을 그대로 안고 가겠다는 희생입니다. 그녀는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자신의 일생을 바쳤습니다. 바로 이 여인의 위대한 헌신을 통하여 임마누엘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마리아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 귀하게 생각하지만, 깜빡 잊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요셉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요셉이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해 보면 요셉 또한 마리아 못지 않게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시는 성탄을 위해 귀히 쓰임 받았습니다. 요셉은 참으로 귀한 일에, 귀하게 쓰임 받은 인물입니다. 그의 귀한 헌신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저와 여러분의 구주와 주님이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떤 인물입니까? 첫째,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1:18).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하고, 아직 결혼하기 전에,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된 것이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동정녀 탄생이요, 또 하나는 다윗의 후손으로 요셉의 가계에서 태어나시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동정녀 탄생이란,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으로 아버지 없이 어머니만으로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과 요셉의 아들이심, 이 두 가지 역설적인 사건을 본문은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요셉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마1:19). 혼전 임신이 결혼할 당사자들 사이에서라면, 과히 덕스럽진 못해도 크게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약혼한 당사자 사이가 아니라면 큰 문제입니다. 구약에는 설사 임신하진 않았더라도, 결혼 전에 처녀성을 잃으면 그녀를 돌로 쳐죽이도록 했습니다(신22:20-21). 그러나 요셉은 이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해결하여, 마리아를 돌로 쳐죽임 당하는 일을 막고자 했습니다. 만약 이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마리아는 가차없이 돌에 맞아죽습니다. 이때 요셉은 이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무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겠지. 만일 나 외에 다른 남자가 있다면 속상하지만 그에게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그는 그녀와 정혼관계를 가만히 끊고 그 사람에게 마리아를 보내주려는 아량과 포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조금도 손해가 되는 일은 원치 않습니다. 이전에 교회에서 성탄 새벽송을 돌 때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시골교회에서 성탄절 새벽에 교회 다니지 않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만 살고 계신 집 앞에서 '고요한 밤' 찬송의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를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할아버지가 소리쳤습니다. "왜 어린 아기 잠자는 것을 가지고 어른 잠을 깨우는 짓이냐!" 이번엔 정말 아기를 키우는 집 앞에서 [고요한 밤]을 부르자, 그 소리에 아기가 잠에서 깨어서 우니까, 아기 엄마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아니, 겨우 아기 재워놨는데, 왜 시끄럽게 해서 자는 아기를 깨우는 거예요?"
그런데 요셉의 자세는 참으로 훌륭하고 도량이 넓은 사람입니다. 이 일은 참으로 엄청난 사건으로 당장 돌로 쳐죽여도 누구 하나 요셉을 비난할 사람이 없습니다. 마리아가 임신했다고 소문내도 그를 탓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엄청난 사건 앞에서 조용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겠지.' 그리고 소리 없이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고자 합니다. 참으로 신중한 사람이요, 신사다운 사람입니다.
둘째, 요셉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마1:20a).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계신지, 마리아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 생각할 때, 천사의 계시가 옵니다.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20절). 이런 이야기는 일찍이 들어본 일도 없고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아기가 잉태된다는 말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는 말씀을 믿고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리아가 요셉 모르게 부정한 일을 저질러서 사생아를 낳고서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둘러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네. 요셉이 가만히 있는데, 왜 자기가 나서서 시비야!"라고 말합니다. 말은 옳은 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의심하기로 하자면, 요셉보다 더 의심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천사를 통해서 들려주신,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잉태되었다는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 참으로 순수하고 깨끗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순수한 믿음의 사람을 쓰셨습니다.
2001년 9.11 테러 당일 유나이티드 93편 비행기를 탑승했던 승객 중에 타드 비머라는 휘튼 대학 출신의 신실한 크리스천 회사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행기가 테러범들에게 납치된 것을 깨닫자, 비행기에서 주변 몇 사람과 함께 테러범들과 싸우기로 의논하고, 주기도문과 시편 23편을 암송한 다음 "자 나가자"(Let's Roll)고 외치며 조종실로 뛰어들어 비행기를 추락시킴으로 워싱턴 국회의사당의 폭파를 막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정한 영웅은 이 사건을 믿음으로 수용했던 그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사건 후 그가 출석한 뉴저지 프린스톤 연합교회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타드 비머의 아버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타드 비머를 아들로 저희 가정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주심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지금까지는 머리로만 알고 있었으나, 이제 제 아들을 보내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 타드의 죽음이 이웃과 이 땅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사용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저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주신 것과 함께, 좋은 아들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내 아들과 천국에서 만날 소망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멘."
셋째, 요셉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마1:24). 요셉은 천사가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1:20)는 말에, 이성적으론 그 말을 그대로 믿는다 하더라도, 감정은 별개일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이 여자는 내 아내인데....'하며, 섭섭하여 약혼을 파기할 수 있었으나, 요셉은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마리아를 데려왔습니다. 그의 속내는 몹시 상하고, 기분 나쁠 수 있었지만, 요셉은 전혀 이에 대해 불만을 표하거나, 마리아를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 놓고, 아기를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이근호 목사의 [물이 흐르는 곳에 식물은 자란다]는 책에 실린 간증입니다. - 지난 10여 년간 미국 내의 많은 지역을 다니며 집회를 인도하는 동안 하나님의 역사와 함께 시련과 역경도 많았습니다. 어느 해에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첫째 아들 조수아가 나에게 심한 꾸지람을 듣고는 그만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짧은 티셔츠 하나만 입은 채 돈 한 푼 없이 나갔으므로 춥고 배고프면 금방 들어오겠지 하고 우리 부부는 별 걱정하지 않고 하루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흘이 넘어가자 우리는 그대로 있을 수 없어 사람 찾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 의뢰했지만 5일째가 되어도 아들의 행방을 전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곳은 흑인과 멕시칸 갱들이 많아 매우 험악한 지역인데다, 집중력 결핍인 아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해 어디엔가 쓰러져 버려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져 참담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7일째가 되는 날, 나는 지난해 약속을 해둔 포틀랜드 침례교회로 집회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먹지도 자지고 못하며 사방을 헤매고 다니는 아내를 두고 떠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집회 약속을 취소할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오랜 기간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준비해 온 그분들의 기대를 개인적인 일로 인해 깨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 집회를 인도하던 저녁, 나는 더 이상 마음을 감춘 채 설교할 수가 없어 우리 가정에 일어난 일을 솔직히 고백하고 온 교우들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니 아내가 아들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상한 심령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을 주님은 기쁘게 보셨습니다. 교우들은 집중력 결핍인 조수아에 관한 간증으로 인해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많은 열매와 축복을 품에 안을 수 있었습니다. - 요셉은 자기 약혼녀가 자기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자기와 무관하게 임신했지만,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의 감정과 이성의 비판을 억누르고, 아무런 반발이 없이 깨끗이 순복하여 그녀를 자기 아내로 데려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의 성탄을 위한 헌신은 무엇입니까? 첫째, 자기 체면과 자존심을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1:18).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하여 이미 결혼 상태나 마찬가지지만 아직 서로 동거하기 전에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남자로서 갖게 될 상처와 배신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정혼을 파기하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자로부터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1:20)는 계시를 받습니다.
요셉은 이 일이 비록 성령으로 되었다 할지라도, 자기와 정혼한 여자가 자기와 동침하기 전에 임신한 일이 몹시 기분상하고, 남자로서 자존심 상할 일이었음에도, 이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기에, 아무 이의 없이 마리아를 데려옵니다. 그리고 그 일은 두 사람이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에 되어진 일로서, 사람들로부터 억울하게 '저 사람들 속도위반 했다'는 등의 입방아에 오를 일이었지만, 이에 대해서도 아무 해명이나 변명을 하지 않습니다. 메시야가 오시 일을 위해 자신이 욕을 먹게되면 먹겠다는 자세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자존심까지도 그대로 내려놓은 모습입니다.
부조 중에서 가장 큰 부조는 명예의 부조라고 합니다. 아무리 많이 도와줘도 상대방 자존심 상하게 하면 상대방은 도움 받고도 섭섭해합니다. 만약 요셉이 마리아에게 의심어린 눈길로 "당신 누구와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따졌다면, 마리아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랬으면 메시야 탄생하시는 일이 얼마나 욕되고 추한 일이 됐겠습니까? 요셉은 결코 유쾌하거나 반길 일이 아니었지만, 천사의 계시를 받은 후, 이 일을 일절 함구하고 조금치도 자존심이나 체면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둘째, 요셉은 자기 아내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1:18). 어떤 사람은 자신은 교회에 나와도 가족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원치 않거나, 혹 자신은 교회에서 봉사하면서도 가족이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은 싫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녀는 공부해야 한다고 교회출석을 제한하거나, 아내가 교회에 빠지는 것이 싫어서 교회에 나가 봉사하는 것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가 돈 몇 푼 헌금하거나, 어느 정도 시간 내어 교회에서 봉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직 처녀의 몸인데도 그 몸을 통해 메시야가 탄생하는 도구가 되도록 헌신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막으려고 바로는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출10:11)며, 모세가 요구한 이스라엘의 모든 '남녀노소'가 광야에 나가 절기를 지킬 것을 막습니다. 성경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라고 말씀하시는데, 마귀는 가족이 모두 하나님 앞에 나가거나, 온 가족이 헌신하며 봉사하는 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체면이나 자존심을 주님 앞에 드렸을 뿐만 아니라, 정혼한 마리아까지 주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셋째, 요셉은 자기가 감당해야할 모든 책임과 수고를 다합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예수께서 탄생하신 후,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마2:2)라고 묻자, 헤롯은 '유대 왕'이란 말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이때 주의 사자가 애굽으로 피신하라고 지시하니, 요셉은 아기와 마리아와 함께 그 밤에 애굽까지 약 120km되는 먼 길을 피난 갑니다. 그곳에서 3년 가량 머문 뒤 헤롯이 죽은 다음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옵니다(마2:21). 이런 피난생활을 요셉이 자기와 무관한 것으로 생각했다면 혼자 몸 사리고 말았겠지만, 그는 자기 책임과 도리를 다한 것입니다. 어디서나 책임지는 자가 어른이고 주인입니다.
어느 허름한 집에 '셋방 있음. 어린이 없는 분'이라고 써 붙였는데, 얼마 후 8살 가량 된 사내아이가 노크하며 묻습니다. "아주머님, 창문에 써 붙인 걸 봤는데, 아직 나가지 않았나 해서요." 이 소년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덧붙입니다. "어린아이는 없습니다. 나하고 늙은 부모님뿐입니다." 밖에는 젊은 부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셋방은 그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어리지만 어른스럽습니다.
미국의 리처드슨 선교사가 처음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복음을 처음 전하던 당시 자바섬에는 식인종들이 살면서 부족들간에는 싸움이 잦았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멈추고 화해할 때는 마을의 갓난아이 한 명을 상대편에게 바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아기를 '평화의 아기'라고 불렀습니다. 리처드슨 선교사가 자바섬에서 사역한지 2년째 되던 해에 부족간에 큰 싸움이 벌어져 싸움은 점점 심해져 도무지 화해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 백인 부부가 갓난아기를 안고 싸움터에 나타났는데, 바로 리처드슨 선교사가 자신의 한 살된 아이를 '평화의 아기'로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제 아이를 평화의 제물로 바칩니다. 이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은 악습과 서로를 증오하는 부질없는 싸움을 중단하십시오." 두 추장은 선교사의 사랑에 눈물을 글썽이며 화해하였습니다. 결국 자바 족들은 백인 부부의 진실한 사랑을 깨닫고 식인의 악습을 완전히 버렸고, 자바섬은 굳게 닫힌 전도의 문이 열렸습니다. 말구유에 오신 예수는 증오와 갈등과 분쟁을 치유하는 화해의 제물이 되신 '평화의 아기'이십니다.
푸에르토리코의 국립미술관에는 [젊은 여자의 젖을 빠는 노인과 여인]이란 루벤스의 그림이 있다고 합니다. 감옥에 갇힌 노인이 쇠사슬에 묶인 채 한 젊은 여인의 젖을 빠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아버지와 딸이라서 패륜적인 듯 한데,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인데, 독재정권은 노인을 가두고 가장 잔인한 '음식물 투입금지 형'으로 굶겨 죽어갑니다. 해산한지 얼마 안 되는 딸은 아버질 면회 갔다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에게 가슴을 풀고 젖을 입에 물립니다. 이 그림은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과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으로 푸에르토리코 인들은 이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사랑한다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저속한 춘화라고 비난하고, 아는 사람은 성화라고 격찬합니다. 모르면 조롱이요, 알고 나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평화의 아기'로 주시는 일에, 마리아는 자기 자궁을 드리며 온갖 수치와 비난을 감수했고, 요셉은 자기 아내와 함께 남편의 자존심을 바쳤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주님께 드림으로 평화의 왕이 다시 이 땅에 오시게 해야합니다. 행여 이 거룩한 성탄을 자신의 기분으로 모욕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들을 이 땅에 선물로 보내신 아버지의 눈에서 또 다른 눈물을 흘리게 하는 슬픈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성탄절의 깊은 의미를 알고 자신을 바쳐 헌신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영광스러운 목회의 길을 걸어갔던 스펄전 목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내 몸의 살 중 단 한 점이라도 주를 위하여 찢어지기를 싫어하는 살이 있다면, 그것을 도려내어 주소서. 내 혈관으로 흐르는 피 중 단 한 방울이라도 주를 위하여 흘려지기를 거절하는 피가 있다면, 그것을 쏟아버려 주소서, 나는 주의 것입니다!" 여러분, 가련한 인간의 몸으로 오시는 평화의 왕을 어떻게 맞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