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0 77회
"하늘에서 내린 만나"
2018년 6월 10일 주일예배
출애굽기 16 : 13 - 20 ; 누가복음 11 : 2 - 4
UN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런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지금 다른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식량부족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면 정직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설문조사는 예산만 낭비하고 실패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선 '식량'이 뭔지 몰랐고, 서유럽은 '부족'이라는 단어를 몰랐습니다. 중국은 '의견'의 뜻을 몰랐고, 중동은 '해결책'이 뭔지 몰랐습니다. 남미에선 '부탁'이라는 걸 몰랐고, 아시아에선 '정직한'이란 뜻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다른 나라'를 몰랐다고 합니다.
사람은 먹어야 사는데, 먹을 것이 없으면 세상은 생지옥이 됩니다. 김훈의 역사소설 [칼의 노래]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역사기록을 이렇게 옮깁니다. "살을 에듯이 추운 날이다. 옷 없는 병졸들이 움츠리고 앉아 떨고 있다. 군량은 바닥났다. 군량은 오지 않았다."(난중일기 1594년 1월20일). "그 무렵 조선 백성들의 참상은 땅위의 지옥을 이루었다. 부자가 서로 잡아먹고 부부가 서로 잡아먹었다. 뼈다귀를 길에 내버렸다"(징비록). "굶어죽은 송장이 길에 널렸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백성들이 덤벼들어 그 살을 뜯어먹었다. 뜯어먹은 자들도 머지않아 죽었다"(난중잡록). "명나라 군사들이 술 취해서 먹은 것을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먹었다. 힘이 없는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뒷전에서 울었다"(난중잡록).
1990년대 말, 5년 동안에 굶어죽은 사람만 해도, 지난 150년에 걸쳐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전쟁과 유혈투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같은 한반도인 북한에서도 지난 1995년부터 1998년까지 기근으로 인해 굶어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2백만 명에서 3백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6.25 한국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북한의 경우는 292만여 명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20세기 말인 1990년대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은 사람이 전쟁으로 인해 죽은 숫자만큼이나 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국제기아대책기구의 보고에 의하면,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에선 1분에 20명(이중 18명이 어린이)이 굶어죽는다고 합니다. 1시간에 1,400명, 하루 3만 5천명, 1년에 1천 300만 명이 굶어죽어 갑니다.
지구는 120억 명을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데 왜 세계 절반은 굶주릴까요? 장 지글러 박사의 저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따르면 현재 세계 225명 대 재산가의 총 자산은 1조 달러가 넘어,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의 47%(35억 명)의 연간수입과 맞먹고, 빌 게이츠의 자산이 가난한 미국인 1억 6천만 명의 자산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또한, 세계 1백대 글로벌기업의 매출은 가난한 120개국의 수출총액보다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농무성 장관은 '세계 인구 중에 1/3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고, 1/3은 너무 많이 먹어 살을 빼려고 애쓰고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양식을 먹는다는 것은 몇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돌보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피난 갈 때, 벧엘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창28:20-21). 자기 나그네길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몸을 위해 먹을 양식을 주시는 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시는 표시로 알았습니다. 때로 우리는 성경을 너무 영적으로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윌리엄 템플 감독은 "기독교는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물질적인 종교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물질을 부정하거나 신앙과 위배되는 것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신령한 것을 중요시하지만 동시에 물질과 육체도 귀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주님은 육신을 위한 양식도 구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둘째, 먹는다는 것은 사람이 움직이는 힘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선지자 엘리야가 지쳐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있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를 먹고 쉬게 하셔서 그를 회복시켜 다시 호렙산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왕상19:8). 모든 운동의 원동력은 음식으로부터 공급됩니다. 건강 이상은 식욕이 떨어지는 데서부터 비롯되기에 곡기를 완전히 끊으면 곧 육체적 생명이 끝납니다. 우리는 일하고 활동하기 위해 반드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셋째, 또 양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유지 뿐만 아니라, 즐기며 잔치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눅15:23). 먹는다는 것은 먹고살기 위해서만 아니라 즐기기(enjoy) 위함도 있습니다. 껌과 담배가 생긴 이유가, 먹는 것을 자주 즐기고 싶으나 계속 먹으면 살이 찌고 부작용이 생기므로 씹되 삼키지 않기 위해서랍니다. 입맛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크롬웰은 식사할 때 "하나님, 귀한 음식을 주시고 왕성한 식욕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어떤 양식도 거둘 수 없는 메마른 사막에서 저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 만나에 대해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출16:31)고 했습니다. 이 '만나'는 이스라엘의 식물인 깟씨와 같고, 진주 모양으로, 그 색깔은 하얗고, 맛은 꿀과 기름을 섞은 과자 맛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날마다 하늘에서 눈처럼 내려 땅에 쌓였으니,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이런 음식이 하늘에서 내려오자, 백성들은 너무 신기하여 "이것이 무엇이냐?(What is it?)"(출16:15)고 물었는데, 이 말을 히브리어로 '만 후'이고, 헬라어로는 '만나'이기에 '만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만나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만나는 하늘에서 주신 양식입니다. 4절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출16:4)라고 했습니다. 이 만나는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린 양식입니다. 하늘에서 내렸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를 뜻합니다. 그들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들을 위해 하늘로부터 주신 것입니다.
조선 현종 때인 1670-71년 두 해 연이어 큰 기근이 들었는데 그것을 '경신대기근'이라고 합니다. 굶주린 사람들은 설익은 밀과 보리까지 베어먹고 떠돌았으며 인육(人肉)을 먹는 일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보고를 접한 관리들은 '올해의 기근은 유례 없는 일'이라며 '국가의 장래가 걱정이다'고 위급한 심정을 나타냈습니다. 당시 조선 인구 500만 명의 25%인 100만 명이 기아와 역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겸손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의 먹고사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두 내가 해낸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공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조건을 통해서 우리가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고 했습니다.
깊은 산 속의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헤매다 도토리가 땅바닥에 널려있었습니다. 멧돼지는 정신 없이 주워먹고도 양이 차지 않자 낙엽을 헤쳐보니 땅에서 여러 알의 도토리들이 또 나왔습니다. 미련한 멧돼지는 맛있는 도토리가 땅속에서 나오는 줄 알고 계속 땅을 깊이 파헤쳤습니다. 결국 도토리 나무가 멧돼지 위로 쓰러져, 멧돼지는 도토리 나무에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이와 같습니다. 모든 것이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상수원의 밸브를 틀지 않으면 집에서 아무리 수도꼭지를 돌려도 한 방울의 물도 얻지 못하듯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수고는 헛될 뿐입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늘로부터 온다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기에,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과 그 사랑을 의지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동문학가 강소천 선생님은 예수를 믿던 분으로 병아리가 물을 들이마시고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고 입을 오므렸다 벌렸다 하는 모습을 보고 [병아리]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번 쳐다보고"라는 단 두 줄로 된 시입니다. 그분은 병아리는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도 하늘을 보며 감사하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온갖 좋은 것을 누리면서도 하늘을 향해 감사할 줄을 모른다면, 병아리만도 못한 인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 만나는 일용(日用)할 양식입니다. 4절에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출16:4)라고 말씀합니다. 만나는 안식일을 제외한 엿새 동안 매일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려, 한 오멜씩 거두게 하셨는데, 1오멜은 대략 2.34리터입니다.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져 먹을 수 없었고, 엿새째 되는 날에는 두 오멜을 거뒀어도 다음날 안식일에 냄새도 나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만나를 한 달치나 일년 치를 한꺼번에 주시지 않고 매일 아침 거두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하루치보다 더 거두면 다음날엔 썩어버렸습니다. 만나를 모아두지 못하고 매일매일 거두어 날마다 필요를 채워주시는 은혜를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은 영양공급이 중단되면 곧 바로 탈진, 탈수, 영양실조가 되기에 매일 음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사막에 굶어 죽어 가는 어린아이 뒤에는 반드시 독수리가 기다리고 있듯이, 우리의 등뒤에서 우리가 굶어죽기를 학수고대하는 사단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며 느끼는 행복은 아이들이 잘먹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녀를 키우며 가장 속상할 때는 아이들이 안 먹는 것입니다. 잘 안 먹거나, 적게 먹으면 곧 영양실조가 되어 제대로 아이가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날엔 설교 한번 들으려고 수십 리를 걸었는데, 요즘은 문만 열면 교회가 있고, TV로 유명한 설교들을 마음껏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봉사 없이 배우고 듣기만 하여 영적 비만에 걸리고, 어떤 분은 영적 기아에 빠지기도 합니다. 중환자실 환자가 아무리 아파도 음식만 섭취하면 소망이 있고, 전혀 먹지 못하면 생명은 꺼지게 됩니다. 그래서 환자를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식도를 통해서라도 음식을 주입시켜 생명을 연장시킵니다. 의학보고에 의하면 건강한 남자는 7일, 여자는 9일 동안 음식을 전혀 섭취 못하면 죽는다고 합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규칙적으로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일용해야 할 말씀 공급 없이,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도 넘게 견디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훈 목사님의 [목회일기] 입니다. "신학생 담임전도사 시절 눈은 온통 땅 위에 쌓이고 쌀은 떨어지고 나무도 다 땠다. 저녁밥을 굶고 나니 첫 아이 갖고 배부른 아내가 가엾고, 왠지 무능한 사람 같아 서글퍼졌다. 40일도 금식한다던데 눈오고 날씨 찬데 돈 꾸러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결혼반지 팔아 쌀 팔아 먹을 수도 없고…. '한끼 굶자' 신앙으로 합의하고 누웠다. 밤 10시가 다 되가는데 계시 받고 온 사람처럼 집사님이 쌀 한 말과 나무를 가지고 와서 부엌에다 놓고 간다. 늦은 밤 저녁상 앞에 놓고 감사 기도하다가 '우리에게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오니 감사하나이다'하는 대목에 나는 울었다. 예수 믿는 날부터 수천 번을 주기도를 외웠으나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밥 한 그릇 얼마나 귀한 것인가! 주님은 날마다 일용할 양식 달라고 기도하시라니…." 주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셋째,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합한 은혜입니다. 만나는 저들이 광야에서 살아가기에 필요 충분한 양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식량대로 한 사람마다 한 오멜씩 만나를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많이 거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둔 사람도 있었는데, 막상 그것을 오멜로 되어보니 모두 한 오멜씩으로,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출16:17-18).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남거나 부족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주십니다. 인간은 끝없는 탐욕으로 자신에게 해롭게 하기까지 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적절한 것을 주십니다.
여러분, 현재의 내 형편, 내가 처지, 이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이대로도 분에 넘칩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이렇게 간증하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미 받은 바에 대하여 감사하며,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하여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 참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현재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한테는 마귀도 손을 못 댑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늘 승리합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의 깊숙한 농촌에서 전도하던 선교사 스미스 부인이 심한 병에 시달리며 선교본부에 자기 병의 증상을 낱낱이 보고하고 돈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돈이 오질 않아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곳에선 음식도 넉넉하지 못하고 약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한달 가량 고생하자 송금이 도착했습니다. 참으로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듬해 안식년을 맞아 본국으로 돌아간 스미스 선교사는 건강진단을 받으면서 1년 전 몹시 앓았던 병의 증상을 설명하자 의사는 빙그레 웃으며 "선교사님, 선교사님의 병을 알겠군요. 그 병은 오트밀 정도의 부드러운 식사로 조금씩 영양을 섭취해가며 한달 정도를 거의 굶는 식이요법으로 음식을 조절해야 낫는 병이었는데 송금한 것이 꼭 한 달 늦게 도착했다니 그 늦게 도착한 것이 선교사님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뜻깊게 이뤄나가시는 것을 알고 스미스 선교사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께 가져야 할 우리의 신앙적 자세는 무엇입니까? 첫째, 겸손히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입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눅11:2-4). 우리 먹고사는 것이 자기 노력으로 얻는 것 같지만, 건강과 일터와 모든 자원 등 다 주어진 것이기에 하나님께 겸손히 구해야 합니다. 만약 구하지 않고 또 감사할 줄 모르면, 이 사실을 깨우치시기 위해 '너 좀 굶어볼래?'하시며, 공급을 제한하실 지도 모를 일입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시각장애뿐만 아니라, 가난으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어느 날 단돈 5불이 없어 중요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자 무릎을 꿇고 주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기도하고 나자 누가 초인종을 누릅니다. 나가보니 모르는 사람이 "당신이 혹시 패니 크로스비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자 "찬송가를 작사했느냐?"면서 "당신이 이곳에 산다기에 얼굴이라도 보려고 들렸다"고 말하더랍니다. 집을 떠나면서 악수하는 그녀의 손에 5불을 쥐어주더랍니다. 이때 작사한 찬송이 찬송 384장입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둘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바에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는 모두에게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알맞은 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출16:17-18). 하나님은 모두에게 필요하고 적합한 양을 얻게 하시는데 사람들은 분수에 맞지 않게 욕심으로 구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 가진 대로 부족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시샘 때문에 자족할 줄 몰라, 불만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미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활조건은 72가지가 있었고 그 중에 절대 필요한 것이 18가지였는데, 요즘에는 그것이 496가지로 늘었고, 그 중에 절대 필요한 것은 28가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풍부한 생활을 향락할 줄 알면서도 그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는 감사할 줄 모름을 회개해야 합니다. 파아핀이라는 사람은 우리에게 다음 세 가지만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해야한다고 말했는데, 첫째는 일용할 양식이요, 둘째는 몸의 건강, 셋째는 소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로버트 번스(Robert Burns)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떤 사람은 먹을 것이 있는데 먹을 수 있는 건강이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먹을 수 있는 건강은 있는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먹을 것도 주시고 먹을 수 있는 건강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자족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나의 양식을 다른 이와 함께 나눠야 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출16:16). 하나님은 사람에 따라 건강하지 못하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밖에 나가 만나를 거둘 수 없어 장막 안에 있는 자들을 위해 더 거두어 그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십니다. 사람들마다 건강이나 학력, 혹은 재능에 따라 거둘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거둘 수 없는 사람도 있으며, 또 거둘 수 있는 양도 제각기 다를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많이 거둔 사람이 거두지 못한 사람이나 적게 거둔 사람과 나누어 함께 먹으라고 하십니다.
몇 해 전 과학자들이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붉은 털 원숭이 일곱 마리를 각각의 유리 방에 집어넣고 서로를 지켜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끈이 있어 끈을 잡아당기면 먹을거리가 떨어지게 했는데, 그럴 때마다 7번 방에 있는 원숭이가 약한 전기충격을 받게 했습니다. 원숭이들은 자기에겐 먹을 것이 떨어지지만 잡아당긴 끈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동료 원숭이를 보면서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원숭이들이 서서히 끈 잡는 것을 두려워하더니 어떤 원숭이는 12일 동안 끈을 잡아당기지 않았습니다. 동료가 아프지 않도록 12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았던 것입니다.
김혜자 씨의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저자가 죽어 가는 어린이들을 돕는 구호활동에 참여하며 쓴 글입니다. "언제까지 이 아이들이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단돈 백원이면 한 끼를 배불리 먹일 수 있는데.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서는 4초마다 한 명의 아이가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고 있고, 매일 3만 5천 명의 아이들이 먹을 게 없어 죽거나 전쟁의 총알받이가 되고, 2억 5천 명 아이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아이들을 고통받게 해야할까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왜 당신은 이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가요?"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그래서 내가 널 보내지 않았느냐?" 이 말은 김혜자 씨가 죽어 가는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던진 하늘을 향한 절규였고, 이에 대한 응답입니다.
한 여자아이가 어머니와 단둘이 2차 대전 때 굶주림과 두려움에 떨면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전쟁 중이라 먹을 것이 없어 아사상태에 이르렀을 때, 한 구호단체로부터 음식물을 도움 받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구호식량으로 어려운 시절을 극복한 이 소녀는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러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되었는데, 그녀가 바로 오드리 헵번입니다. 그녀는 1954년부터 꾸준히 기부활동에 참여하며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 등의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직접 찾아 봉사활동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이제 내가 받았던 사랑의 빚을 갚을 차례입니다. 나를 구해준 단체를 위해 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나는 정말 기쁩니다." 사랑은 죽어 가는 생명을 살려내고,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꽃을 피웁니다.
영화 '정관정요'에서 당태종 '이세민'이 말합니다. "나는 반드시 따뜻할 때 추웠던 시절을 잊지 않을 것이고, 배부를 때 굶주렸던 시절을 잊지 않을 것이며, 과거 나와 함께 했던 옛 동지들을 잊지 않겠다." 하나님은 내 사정을 잘 아시고, 나의 필요를 공급하시면서, 또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의 주린 자들을 보시며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14:1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