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9 211회
“우리 주님의 효도”
2021년 5월 9일 주일예배
요한복음 19 : 25 - 30 ; 신명기 5 : 16
사람들은 부모의 부모다운 인격(personality) 때문에 부모를 공경한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부모의 부모된 위치(position) 때문에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부모 공경은 자식들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으로 이 명령에는 오직 순종만 요구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효도에 대하여 우리에게 어떤 본을 보여주셨을까요?
첫째,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심으로 효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19:30). ‘다 이루었다’는 말은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인데, 이 말은 본래 경제용어로 ‘빚이 다 갚아졌다’는 뜻입니다. 죄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갚아야할 도덕적인 부채인데, 인간은 모두 죄를 범하여 이 빚을 갚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대신 갚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고 했는데, 주님은 우리의 죄의 빚을 갚고자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도 처음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26:39)하시며, 그 고통이 그냥 지나가기를 원하셨으나, 기도하신 끝에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26:42)하시며,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장렬하게 걸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으로 죄 사함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주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둘째, 어머니 마리아를 봉양함으로 효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19:26-27). 주님은 십자가에서 그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으면 ‘어머니를 누가 모실 것인가’하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염려를 하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던 제자 요한에게 “요한아 네 어머니로 모셔다오”이렇게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전승에 의하면 사도 요한은 백살이 넘도록 살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셨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의 장수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는 말씀대로, 어머니를 잘 모신데 대한 보상인지도 모릅니다.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된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모시고 극진한 효도했다고 합니다. 그는 말년에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었는데, 그때도 마리아를 봉양했습니다. 주님은 하늘 아버지께 순종하기 위해 33세 나이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에, 어머니 마리아를 직접 모실 수는 없었지만, 사랑하는 제자인 사도 요한에게 당부하여 어머니 마리아가 노년에 의탁할 곳 없이 외롭고 힘들게 지내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신 것입니다.
셋째, 부모 공경을 가장 소중한 교훈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내세워 부모공경을 외면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15:4-6). ‘고르반’은 본래 ‘하나님께 바쳐진 선물’을 일컫는 말로서, ‘이 것은 고르반 되었다’고만 말하면 아무도 손댈 수가 없는 것으로, 사적 용도로 쓰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부모에게 당연히 드려야할 것도 ‘고르반’이라 하여 드리지 않고, 부모 모시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저들이 사람의 관습으로 계명을 어기고,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길 뿐, 내적으로는 경건을 배반한다며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9)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모를 섬기지 아니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될 구실은 전혀 없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무조건적이다. 경제적인 구실, 사회적인 여건, 교육적인 이유, 정치적인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종교적인 이유도 구실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시 장로의 유전에 의하면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는 부모를 소홀히 대해도 무방하다’고 했으나, 예수님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3절)고 책망하십니다. 부모 공경에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라는 변명이 통할 수 없다는 것이 주님이 강조하신 효도의 절대성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누누이 강조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효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 계명은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이로 말미암아 축복이 보증되어 있는 계명입니다.
성경은 엄히 말씀합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부모를 통해 우리를 보살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릴 위해 희생하신 부모를 공경하여, 그 보상으로 생명이 길고 이 땅에서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