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9 73회
"지혜롭고 신실한 청지기"
2018년 12월 9일 주일예배
누가복음 12 : 41 - 48 ; 잠언 25 : 13
비엔나 의과대학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유명한 외과 의사인 교수님이 의과대학에 입학한 학생들 앞에서 첫 강의를 하게되었습니다. 학생들은 긴장한 가운데 교수님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교수님이 말합니다. "여러분은 훌륭한 외과의사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훌륭한 외과의사가 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자질을 이제부터 갖춰야합니다." 모두 심각한 얼굴로 교수를 쳐다보며 경청했습니다. "첫째는 역겨운 냄새와 더러운 분비물과 썩은 고름 같은 것에 익숙해져야합니다." 학생들은 모두 '이런 것들은 정말 끔찍하지만 외과의사는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둘째는 예민한 관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서 교수님은 더럽고 냄새나는 고름이 담긴 그릇에 손가락을 푹 넣었다 꺼내어 입으로 핥고 나서 "나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역겹고 끔찍했지만 여기에 운명을 걸었기에 그래야 된다고 여겨 하나씩 나와서 그 더러운 물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혀로 핥았습니다. 다 끝난 다음에 교수님이 평가했습니다. "여러분은 첫 번째 자질에 대해서는 아주 우수하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자질은 아주 형편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학생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그때 교수님이 말합니다. "나는 이 더러운 곳에 넣었던 손가락이 아닌 다른 손가락을 빨았는데, 당신들은 그것을 못 보았던 것입니다." 모든 일에 열정적인 헌신이 요구되지만, 냉철한 지혜와 예리한 안목도 요구됩니다.
미국 닉슨으로부터 클린턴까지 4명의 대통령의 언론보좌관으로 일했던 데이비드 거겐(David Gergen)은 [CEO 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이라는 책에서, 대통령에게는 '일관성과, 소명의식, 설득력, 다른 정치인과는 협력하는 능력, 취임 초기의 순발력, 주변의 숙달된 참모진,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 등 일곱 가지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대통령이 되려고 준비를 잘한 사람은 리처드 닉슨이라면서, 닉슨은 중국을 개방시키고, 데탕트의 큰 틀을 짰고, 군축의 시대를 연 국제정치전략가였고, 인재발탁에도 뛰어나, 콜린 파월, 도널드 럼스펠드, 제임스 베이커, 알렉산더 헤이그, 딕 체니, 헨리 키신저, 죠지 슐츠, 캐스퍼 와인버거 등 기라성 같은 인재를 발굴하여 중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의 최악의 대통령이 됐는데, 그 이유는 똑똑하고 준비는 잘했지만,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신뢰하거나 좋아하지 않았고, 많은 적을 양산했고, 오만과 독선적인 통치스타일로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지미 카터는 나라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백성들은 진정 무엇을 원하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대통령인 자기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았던 대통령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사41:8)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자기 '주인'으로, 그리고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고 소개했습니다(롬1:1, 빌1:1, 딛1:1). 옛날 로마사람들은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면 "가이사는 주님이시다"고 인사하고, 다른 사람은 "맞습니다. 나의 주님은 가이사입니다"라고 화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때, 이 말 대신 "아니요, 나의 주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형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거나, 노예로 팔려가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유일한 주님이시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에 인간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종입니다. 성경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고 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 생명을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셔서 이 땅에 보내신 존재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소유요, 그분을 섬겨야 할 종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과 구속함을 받았기에 그분의 종입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우리가 죄 값으로 팔린 것을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되었기에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자신이 하나님이 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 예수님은 "주인이 돌아올 때를 대비하여 깨어 준비하고 있는 종들은 복이 있다"(37-38절)하시며,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40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41절). 그러자 예수님은 그 대상에 대해선 뚜렷이 대답치 않으시고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42-43절)고 하시며 '너희부터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청지기'라 불리는 종이 있었습니다. '청지기'란 히브리어로는 '멜르차르'이고, 헬라어로는 '오이코노모스'로서, '집을 지킨다', '집을 관리한다'는 뜻입니다. 청지기는 자기 주인의 재산 관리자였고, 주인을 식탁에서 시중들기도 했으며, 하인에 대한 감독을 맡아, 다른 종에게 줄 배급량을 책임지는 경우도 있었기에 실제 권력이나 지위 면에서 자유민이나 농민보다 더 나았습니다. 주인의 신임을 받아서 집안 모든 살림을 관장하는 집사와 같은 직무를 담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이라면 기분 나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 문제가 다릅니다. 노예는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소속돼 있기에, 주인은 종의 모든 생활을 책임져주므로, 종은 아무 걱정할 게 없습니다. 살고 죽는 것까지 주인에게 아주 맡겼기에 종은 주인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종은 주인의 권세 아래서 삽니다. 종은 주인을 위하여 살고, 주인이 내리는 특권을 누리고 사는 신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이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는 존재입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병으로 죽어 가는 분에게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구원받은 사람의 얘기를 하며, "선생님도 늦지 않았어요. 이 강도처럼 예수 믿고 구원받고 천국 가셔야합니다"고 전도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죽기 전에도 자존심이 있었던지 "목사님, 나는 강도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묻겠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 사셨습니까? 자신을 위해 사셨습니까?" 그러자 "아, 저야 하나님 몰랐으니까 저 자신을 위해 살았죠"라고 대답합니다. 이 사람이 은행에서 일하던 분이었기에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어떤 지점장이 본점의 지시 없이, 예금된 돈을 본점에 보내지 않고 자신이 다 써버렸다면 그런 사람을 뭐라고 말할까요?" 그러자 그가 대뜸 "그러면 도둑이네요"하자, 목사님이 "선생님,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만 위해 살았다면 그게 도둑 아니겠습니까?"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을 못하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생명을 가지고 누구를 위해 어떤 생을 살아갑니까?
그리고 종은 주인으로부터 그가 행한 행실에 따른 상벌이 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눅12:42-44).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주인께 대한 충성과 맡은 일에 대한 성실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는 말씀과 같이 내게 일을 맡기셨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주인께 대한 충성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인으로부터 '잘했다'는 칭찬 받는 '청지기의 세 가지 자세'를 배웁니다. 첫째, 깨어있는 청지기가 되어야합니다. 본문 앞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눅12:35-37).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대한 준비를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등불을 켠 것은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에 잠자지 않고 깨어 있다가, 주인이 오면 금방 맞아들일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안일에 빠져 주님 오심과 부르심을 듣지 못하는 잠에 빠지지 말아야합니다.
미국의 강철 왕 카네기가 후계자를 세울 때, 자기 아들이나 명석하고 탁월한 회사의 중역을 후계자로 뽑지 않고, 학력이 겨우 초등학교 졸업인 '쉬브'라는 무명의 인물을 지명했습니다. '쉬브'는 카네기의 회사에 청소부로 들어와 그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는 자기 맡은 장소만이 아니라 공장 전체를 구석구석까지 쓸며 청소했습니다. 평소 이런 태도를 보고 그를 정식사원으로 채용해주었고, 정사원이 되어서도 남달리 충성하여 사무직을 맡다가, 그의 빈틈없는 충성이 인정되어 카네기의 비서실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카네기가 있는 곳엔 언제 어디서나 그가 있었으며, 그의 손엔 늘 메모지와 펜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카네기가 공장확장과 생산과정에 대해 골몰하느라 밤늦게 사무실에 있다가 집에 가려고 나오니, 그때까지 '쉬브'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카네기가 놀라며 "쉬브! 왜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는가?"고 묻자, 쉬브는 "사장님께서 저를 언제 부르실 지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울 수 있겠습니까?"라고 당연한 듯 대답하더랍니다. 이런 쉬브의 모습을 보고 카네기는 자기 아들이나 중역에게 회사를 맡기지 않고 그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둘째,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라고 하십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42절). 여기에서 '지혜'는, 뒤에 47절에서 말씀한 '주인의 뜻을 알고도'라는 뜻입니다. '청지기의 지혜'는 곧 '주인의 뜻을 잘 헤아리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열심만으론 안되고, 주인이 지시가 무엇이며,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살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신은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자처하지만, 주님은 마지막 심판 때, '주여, 주여!'할지라도, 주님의 뜻대로 하지 않은 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아내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마7:22-23). 종은 주인의 뜻을 바로 헤아려야 합니다.
두 젊은이가 같은 회사에 취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젊은이만 승진하자 진급하지 못한 직원이 사장의 불공평함을 따졌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그에게 "시장에 나가 어떤 물건이 거래되는지 알아 오라"고 이르자, 그는 "농사꾼이 감자를 팔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사장은 "양이 얼마나 되고, 가격은 얼마냐?"고 묻자, 그는 "그것까지 알아오라고 말하지 않으셨잖아요"하고 퉁명스레 대답합니다. 사장은 그의 앞에서 승진한 직원에게 똑같은 지시를 하니, 그가 다녀와 보고합니다. "오늘은 감자 아흔 포대가 거래됐고, 가격은 한 포대에 만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감자를 보이며 "품질에 비해 가격이 싸니 사두면 큰 이익이 되겠습니다"고 제안합니다. 사장은 불만 가득한 직원에게 말합니다. "왜 자네가 적은 월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알겠나?" 그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혜로운 종은 주인의 뜻을 헤아립니다.
주님의 뜻을 잘 알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흥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주님은 당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시고, 우리는 주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셋째,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42절)에서 '진실하다'는 헬라어 '피스토스'는 '신실한' '믿음직스러운'의 뜻입니다. 청지기는 충성되어야 합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라고 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책임 맡은 자는 주인에게 신실함을 보여야 하고, 맡은 일에 대해 성실해야 합니다. 지혜나 능력을 다 갖췄어도 신실함이 없으면, 구멍 뚫어진 전대처럼 아무 것도 담을 수 없습니다. 능력이나 지혜가 부족하면, 주님이 주시지만 성실이 없으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란 책망과 함께 쫓겨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데 따른 책임이 있고, 그 책임에 따른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맡은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주어진 시간입니다. 야고보서 말씀입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4:13-17). 우리는 누구도 감히 내일을 장담할 수 없고, 오직 주께서 허락하신 시간동안 일할 뿐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동인이와 동신이 두 아들을 죽인 원수까지 사랑하여 양아들로 삼았던 하나의 극적인 사건이 그를 위대하게 한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을 순교적으로 산 때문입니다. 그분이 죽기 전 최후로 남긴 [죽도록 충성하라]는 설교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땀 흘려 일하십시오. 눈물을 흘려 기도하십시오. 피 흘리기까지 죄와 더불어 싸우십시오. 열과 성을 다하여 전도하십시오. 이것이 충성입니다. 이것이 순교입니다. 그래서 땀이 귀하고 피가 귀한 것입니다. 오늘 하루만 내 날이요, 지금 이 시간만이 나의 시간인 줄을 아는 자는 날마다 충성할 것입니다. 그는 시간마다 순교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하루 하루를 이렇게 순교적으로 사셨기에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도 순교로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남은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과연 어떻게 쓰여져야 하겠습니까?
둘째, 물질을 맡았습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8). 본래 하나님의 것인 재물을 우리에게 맡기셨기에, 우리는 그 재물 사용에 따른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1700년대 후반 영국은 산업화로 인해 향락과 사치, 도덕적인 타락으로 병들어갔습니다. 그때도 사람들의 빗나간 재물관리의 병리현상이 극심하던 때, 요한 웨슬리는 영적 각성운동을 펼쳐 영국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재물관리 청지기론'에서, "돈을 쓸 때 하나님의 청지기 된 나의 도덕에 어긋남이 있지 아니한가를 살피고, 돈 쓰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가를 파악하고, 이 돈의 사용이 훗날 하나님의 상을 받을만한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존 록펠러의 손자로서 맨해튼의 총재였던 데이빗 록펠러가 어릴 때, 아버지는 그에게 매주일 25센트씩 주고는 토요일마다 그의 금전출납부를 조사하여 돈을 쓴 명목이 나쁘면 5센트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잘 사용했으면 5센트를 보너스로 주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세 가지 중요한 원리를 가르쳤습니다. "첫째, 10%는 꼭 하나님께 드려라. 둘째, 다른 10%는 저축해라. 셋째, 10%는 반드시 자선사업을 해라." 그는 이것을 먼저 실천한 후에 나머지를 가지고 사용했습니다. 그는 이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부요의 법칙을 배웠으며,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가르쳤다고 합니다.
셋째, 직분을 맡았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맡은 직분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직분이 높아졌다면 그만큼 봉사의 분량이 많아진 것입니다. 직분을 위세로 생각지 말고, 겸손하게 봉사해야 합니다.
요즘은 어느 교회에 소속되면 직분을 맡아야 하고, 어떤 책임을 져야하기에 아예 교회에 등록하지 않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가정이 없는 부부와도 같습니다. 좋은 성도에게는 세 가지 '내 것'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내 교회, 내 목사, 내 사명'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이 땅의 교회 중에 어디 완전한 교회가 있겠습니까? 완전하지 못해도 그곳에 몸담고, 때로 교회를 위해 염려도 하고, 위해 기도도 하며,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면, 주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그의 신앙을 바르게 자라게 하시고, 하늘의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더디 오리라 여기고 노비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하여 있으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게 될 것"(46절)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깨어있는 지혜롭고 충성된 종에게 주인은 어떻게 하겠다고 하십니까?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눅12:43-44). 하나님은 직분을 충실히 감당한 자에게 '모든 소유를 맡기겠다'는 약속하시며,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축복해 주십니다.
1947년 미국의 시카고 근처의 위스콘신 주에 있는 천체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천체물리학자 첸드리스카 박사는 시카고대학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박사님, 겨울방학 동안에 저희 대학에 와서 고급물리학에 관한 특별강의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는 쾌히 승낙했습니다. 몇 주 후에 다시 대학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사님 아무래도 강의를 취소해야 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클래스가 너무 작아서요. 두 명밖에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첸드리스카 박사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클래스가 작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등록한 두 학생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시지요." 그래서 알려줬더니 첸드리스카 박사는 "제가 강의를 하죠." 시카고의 겨울은 유난히 추운데, 그 겨울동안 첸드리스카 박사는 시카고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눈보라와 사나운 바람을 헤치고 달려와, 일주일에 이틀 간 한 번도 빠짐이 없이 두 학생을 상대로 겨울학기 강의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흘렀습니다. 이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받았던 두 사람이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됩니다. 한 사람은 첸넝 양 박사이고,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충도 리라는 중국계 두 미국 과학자였습니다. 그들은 수상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이 상을 수상하게된 데는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 앞에서 했던 한 교수의 성실한 강의가 노벨상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명한 거장 화가인 미켈란젤로가 씨스틴 채플의 천장 벽화 프레스코를 거의 완성할 즈음, 작품은 이제 다 끝난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천장을 향해 마지막 마무리 터치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를 도왔던 조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젠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자네 눈에는 끝난 것으로 보이는가? 내 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 그리고 몇 달을 더 그는 계속해서 이 작품에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작업이 완전히 마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작업도구를 치우지 않고 계속 천장을 응시하면서 그 장소를 맴돌았습니다. 다시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정말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때 미켈란젤로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내 눈에는 끝났는데 주님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지..."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처음에도 내 것이 아니었고, 어느 것도 내 것일 수 없음에도, 우리는 시간, 건강, 재능, 물질, 직분 등, 많은 것들을 맡아서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야만 합니다. 이렇게 충성하는 자들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합니다."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25:13). 주님은 오늘도 이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지혜 있고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