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6 187회
“행복의 역설(逆說)”
2021년 6월 6일 주일예배
사도행전 20 : 31 - 35 ; 시편 37 : 25 - 26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이 말씀은 8복에 이은 ‘제 9복’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왜 주는 것이 복될까요? 첫째, 남에게 줄 때, 내게 더 큰 것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며, 우리의 선행을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풍성히 갚아 주신다고 하십니다. 남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은 내 것이 나가는 손실 같지만, 하나님은 손실을 손실로 두지 않으시고, 더 큰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둘째, 주는 일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은 성숙한 신앙인이 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주님은 말씀 그대로 자신을 주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도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인류를 위해 주셨습니다(요3:16). 어린아이는 받을 것만 생각하지만, 어른은 누구에겐가 줄 것을 생각합니다. 이웃을 배려하며 어른으로 성숙해지듯,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드림으로 주님을 닮아갑니다.
셋째, 남을 위해 베푸는 삶을 살게 될 때, 자녀 대까지 복 받게 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시37:25-26).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최소한 그 자식들이 빌어먹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열왕기상에 사르밧 땅에 한 과부가 엘리야를 섬겼더니, 이로 인해 가뭄이 끝날 때까지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고, 그 아들이 죽게 되었을 때 엘리야의 기도로 그 아들이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4장에서도, 수넴의 한 귀부인이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극진히 대접하더니, 이 일로 그 가정에 아들이 주어졌고, 나중에 이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엘리사가 기도하여 살게 된 이야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선행에 대해서 그 자녀들 대에 가서도 결코 그 상을 잊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주어야 합니까? 첫째, 먼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주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 앞의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고 말했습니다. 저들에게는 그리스도가 계셨기에 앉은뱅이를 향해 그리스도를 전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진 것만 줄 수 있습니다. 내게 그리스도가 안 계시면 그리스도를 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나 자신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얼 준다는 것이 재물만 생각하기 쉽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입니다. 바울은 제자 디도에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심을 말씀하며, 그분을 본받고 따를 것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 우리 주님은 당신 전부를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셋째, 내가 지닌 물질도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고후12:15).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재물까지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마6:21)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를 위하여 내 소중한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주어야 합니까? 먼저,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다”(고후8:2)고 칭찬하면서,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5)라고 밝힙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이방인으로 그리스도 밖에 있던 저들에게 주님의 복음이 값없이 전해져 구원을 얻게 된 사실이 감사하여 먼저 주님께 자신을 드려 헌신했습니다. 우리도 당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다음, 어려운 이웃에게 주어야합니다. 35절의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라는 말씀처럼, 약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주님을 섬기는 일이 되기도 하고,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든지 상대방을 기쁘게 하려고, 어쩌든지 주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을 들숨과 날숨과 같아서 들숨이 크면 날숨도 크고, 날숨이 크면 들숨도 커집니다. 만일 들숨을 그치면 날숨도 그치고, 날숨이 그치면 들숨도 그치게 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이런 연속적 관계 속에서 전개됩니다. 사랑도 재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는 자가 받게 되고 받게 되면 주게 됩니다. 그러니 진정 받고자 한다면 먼저 주어야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해야 할지니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