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님

누가복음 12장 13~21절

설교요약 :

"온갖 탐심을 물리치라"
2018년 9월 16일 주일예배
누가복음 12 : 13 - 21 ; 잠언 22 : 1 - 4


어떤 남자가 길을 가다 요술램프를 주워 램프를 문지르자 요정의 나와 "소원 한 가지만 들어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하자, 남자는 돈도 갖고 싶고, 그리고 예쁜 여자도 만나, 결혼도 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꾀를 내어 이 세 가지를 모두 얻으려고 한번에 말했습니다. "돈, 여자, 결혼!" 그러자 그는 '정신이 돈 여자'와 결혼하게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모두 얻으려다가 큰 낭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조지 번이라는 코미디언은 인간의 욕심을 풍자하여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주지 않은 이유는 옷을 주면 주머니를 달아달라고 할 것이고, 주머니를 주면 거기에 돈을 채워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고민은 마크 트웨인이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인생에는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훨씬 더 많은데, 문제는 이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는 사실이다'고 말한 대로, 돈을 무시할 수도, 그렇다고 돈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리신광교회에서 열린 제 103회 교단 총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총회의 최대이슈는, 명성교회의 담임목사직 부자세습 문제였습니다. 우리 교단은 2013년 '사임 또는 은퇴하는 위임(담임)목사의 배우자, 직계비속과 그 배우자는 위임목사나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고 교단헌법으로 규정했는데, 명성교회는 지난해 11월 교회설립자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가 취임했습니다. 여기에 비난이 일자, 교단재판국과 헌법위원회는 '은퇴하는' 목사의 세습은 금지하지만, 이미 '은퇴한' 이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며, 김하나 목사의 승계가 적법하다고 판결하여 명성교회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런데 이번 총회에서 이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의결하여 부자승계를 무효화시켰고, 재판국원 전원을 교체했습니다.


담임목사직 세습이 절대 악은 아니지만 논란이 뜨거워, 제가 지난 해 신학교 동기 카톡방에 세 가지 이유의 명성교회 부자세습의 문제의 문제점을 올렸었습니다. 첫째, 공교회(公敎會)의 훼손으로, 김하나 목사가 김삼환 목사의 아들이라는 점 외에 후임자로 선임될 보편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 둘째, 교단법이 이를 금지하는데 큰 교회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 셋째, 사회에서도 부자세습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팽배한데, 이로 인해 교회의 이미지 실추가 크다는 점을 들었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신학자는 "천 명 이상 모이는 교회 목사는 자기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라 생각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는데, 소위 대형교회로 키운 목회자는 '내가 어떻게 키운 교회인데 남에게 주느냐'는 발상으로 담임목사직을 세습화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홍정길 목사님은 "어떻게 감히 '내가'라고 말하느냐? 모든 것이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더냐?"고 일갈하였습니다. 욕심이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오직 물질의 소유와 쾌락으로만 행복을 추구하려는 한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이런 요청을 합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눅12:13). 이 사람은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형과 분배하면서, 형이 자기 몫을 나눠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유산 분배원칙은 맏아들이 동생보다 갑절을 더 받게 되었기에, 두 형제라면 형이 2/3를 받고, 동생은 1/3을 받게 되어 있는데, 이 사람은 그 1/3마저도 형이 주지 않는다고 그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 형을 잘 타일러서 동생인 자기 몫을 떼어주도록 설득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요청에 대해 14절에서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이 사람의 요청을 거절하시고 도리어 책망하실까요? 예수님은 공정한 재산분배나 공평에 근거한 정의를 세우는 일에 대해선 아무 관심이 없으시거나, 혹은 물질 문제에 대해선 무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앞에 있는 6절 말씀에서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라며 당시 참새가 얼마에 팔리는 것도 잘 아실 만큼 물가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무디신학교 학장이었던 죠지 스위팅은 "예수님은 37회에 걸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그 가운데 17회나 재산 관리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이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책임에 대하여 가르치셨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또 재산분배나, 정의의 문제에 대해서도 11, 12절에서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눅12:11-12)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부당한 권력 앞에 끌려가 당하는 억울한 일을 하나님은 이를 외면치 않으시고, 성령께서 그때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가르쳐 주신다며, 억울하고 고통 당하는 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 사람을 책망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보다 본질적인 교훈을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사람의 눈에만 잘 보이려하는 외식을 주의하라"며(1절),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2절)면서,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는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자이니 그를 두려워하라"(12:4-5)며,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심판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이 사람은 기껏 예수님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13절)하는 부탁이나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여러분, 만약 예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들려주신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시간에 고작 형제간 재산 문제나 아뢰어야 하겠습니까? 이 말씀은 오늘도 눈에 보이는 현세와 물질에만 집착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의도와 핵심은 외면하고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자가 농사지어 많은 소출을 얻게 되자 '이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하고 궁리하다가 '옳지, 창고를 헐고 더 크게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보관해야지. 그리고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내 영혼아,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이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눅12:19 공동번역)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이 농부가 잡은 몇 가지 커다란 행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 물질적인 부를 얻었습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눅12:16-17). 이 사람은 본래에도 부자였는데 그가 농사를 짓자 농사도 잘되어 많은 소출을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저장할 곡간조차 모자라, 더 커다란 곳간을 짓겠다고 하는데, 여기서 '곡간'의 헬라어 '아포데커'는 다른 데서는 '창고'로 번역했는데, 아마도 이 부자는 농사를 지으면서, 그것을 저장했다가 파는 곡물상까지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농사를 짓든 사업을 하든, 그 일이 잘되어 많은 수입을 거두는 것은 좋은 일로서, 모든 사람들이 소원하는 큰 행운입니다.


둘째, 이 부자는 그가 얻은 많은 수입으로 더 이상 일하지 않고 쉴 수 있는 여유를 얻었습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눅12:19). 사람들 중에는 쉬고 싶어도,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살 수 없어, 건강이 여의치 못하고, 나이가 들었는데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젊고 건강할 때 일하는 것은 축복이지만, 일할 수 없는 형편에서도 억지로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그가 얻은 많은 재산으로 인하여 일하지 않고 이젠 편히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 마음껏 쾌락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부자는 많은 수확을 거두고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눅12:19b)고 말합니다. 그는 오랜 세월 피땀 흘려 부를 축적했기에, 그 부를 가지고 안락하고 풍족한 세월을 누리려는 욕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의 쾌락을 즐기고 싶어도 가진 재물이 있어야 즐길 수 있고, 또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건강하지 못하면 이 또한 육체적 향락을 즐길 수 없는데, 이 부자는 돈도, 건강도 있었기에 이제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돈이 많고, 여유가 있어 무거운 일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쉬고 놀면서 육체적 쾌락을 누리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소원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은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놀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놀지 못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돈도, 시간도 있지만, 건강이 없어서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마음껏 놀고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어리석은 부자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의 삶에는 세 가지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첫째, 그는 자신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농사를 잘 지어 많은 곡식을 쌓아놓고서 편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며 '영혼'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는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 말씀이나, 영혼의 호흡인 기도에 대해선 관심 없고, 오직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만 그의 관심사였습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하실 때, 마귀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할 때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대답하셨습니다.


'탐심'은 헬라어로 '프레온렉시아'인데, 영어의 'more'인 '프레온'에, 'have'에 해당하는 '렉시아'를 합친 말로서, '더 많이 갖으려는 마음'으로 분수에 넘치도록 더 갖겠다는 자족이 없는 마음입니다. 성경은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6:6)고 했는데, 욕심에 사로잡히면 영혼에 대한 관심은 사라집니다.


수도사 에바그리우스는 "이 땅의 재물을 많이 움켜쥔 자들은 마치 무거운 짐을 가득 실은 선박 같아서, 폭풍우가 심하게 불 때 난파할 가능성이 무척 높아지지만, 반면 재물을 손에서 놓은 자들은 날개가 가벼워진 독수리가 더 높이 올라 폭넓은 시야를 확보하여 먹이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삶이 훨씬 안전해진다"고 말했습니다. 돈을 의지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찾거나 의지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세상 욕심에서 가벼워지면 가벼워질수록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의지하기 쉽게 됩니다.


둘째, 그에게는 이웃이 없었습니다. 그는 많은 소출을 거두어 그 곡식을 쌓을 곳이 없어 창고를 새로 지어야 할 정도가 되었지만, 이것을 함께 나누며 즐길 이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19절)라고 혼자 독백합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혼자서 먹으면 그 맛을 느낄 수 없고, 아무리 호화로운 집에 산다 해도 누군가 찾아오는 사람이 없이 혼자 산다면, 그 집은 감옥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옷을 입어도, 그 옷을 봐줄 사람이 없으면 초라합니다. 그는 그 많은 곡식을 쌓아놓고도 가난한 이웃을 돕고 나눌 것에 대해선 관심도 없이 오직 혼자 먹고 마시고 즐길 생각에만 몰두했습니다.


인색한 부자가 인생의 지혜를 얻고자 랍비를 불러 가르침을 부탁했습니다. 랍비가 그를 창가로 데려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보이지요?" "아, 꽃이 보입니다. 꽃이 저렇게 아름다운지 처음 봅니다!" 또 묻습니다. "저 창문으로는 무엇이 보입니까?" "산과 바다가 저토록 아름답군요. 이 창에 저렇게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있었다니!" 다른 창가로 데려가 또 묻습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잔디밭에서 노는 아이들이 보이는데, 저렇게 아이들이 귀여운지 처음 봅니다!" 부자는 창 밖이 이토록 아름다운지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를 커다란 거울 앞에 세우고 물었습니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제 얼굴이 보입니다." 랍비가 말했습니다. "창문과 거울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으나 거울 뒤에는 수은이 칠해져 있어 밖이 보이지 않고, 자신만 보여줍니다. 이처럼 마음이 탐욕으로 칠해지면 온갖 세상의 아름다움은 볼 수 없고, 자기 모습만 보게 됩니다. 마음의 창문을 가져야 아름다운 삶을 얻게 됩니다."


셋째, 이 어리석은 부자에게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런 풍성한 소출을 얻고서도, 햇빛과 비를 주시며, 곡식을 자라게 하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기 힘으로 된 줄 알고, 자신에게만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말합니다. 바울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19)는 말씀처럼 이 부자는 자신의 배(腹)가 신(神)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여유 만만하고 희희낙락하던 그에게 무서운 심판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12:20). 이 부자는 '여러 해' 동안 꿈꾸며 노력해온 끝에 이제 여유를 즐기려는데, 하나님은 '오늘 밤' 그의 영혼을 데려가심으로, 그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네 영혼을 도로 찾는다'는 말씀은 생명에 대해선 하나님이 전적인 권한을 갖고 계심을 뜻합니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이젠 인생을 즐기려했으나, 갑자기 찾아온 죽음이 그를 영원한 심판으로 내몰아버립니다.


1970년대 한 기자가 중동지역의 한국 건설업체를 취재하고서, 후에 미국 교포사회까지 둘러보고, 그때 느낀 점을 이런 제목으로 기사화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중동에서는 알라신을! 미국에서는 달라 신을!" 돈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재물, 이 재물의 위치를 확실하게 정해 두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재물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나를 관리하고 지배하게 됩니다. 돈을 신처럼 받들어 섬겨야하는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이 그 사람을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탐심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이 내 인생과 물질의 주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모으는 이유는 내일에 대한 염려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물질을 모아놓고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12:19)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12:20)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기에, 성 어거스틴은 "내 하나님이 아닌 모든 부(富)는 내게 빈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좋은 것들이 다 하늘로부터 주어집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일들이, 눈에 보이는 육체의 생활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물질적 부의 축적만을 최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바람이 고요하고 순풍가운데 순항할 때는 이것이 지혜요 성공으로 여기겠지만, 인생의 항해에는 반드시 풍랑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질병, 파산, 실패, 죽음 등, 이런 폭풍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그의 삶은 처절한 실패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둘째,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물질은 아무리 벌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가진 바를 가지고 만족할 줄 모르면 언제나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간디는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고 말했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도리어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느 장로님이 하나님이 축복으로 상당한 부를 이뤘는데,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2, 30만원 벌 땐 십일조를 감사하게 냈고 100만원 벌 때도 10만원을 기쁘게 냈는데, 사업이 잘되어 한달 수입이 2천만 원이 넘어 2백 만원 십일조를 세려니 손이 떨려 감사가 사라지고 '이걸 꼭 다 바쳐야하나? 정성만 적당히 표하면 되지' 수많은 갈등이 교차하기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제게 물질의 복을 주신만큼 믿음의 분량도 갑절로 주셔야 하겠습니다." 이때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더랍니다. 이것이 자족입니다.


셋째, 이웃과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19:17).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 그를 도우면, 내가 어려울 때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먹고살기에 모자라지 않지만, 적은 사람들이 독점하고 있기에 세상은 굶주린 자가 끊이지 않습니다. 서로 나누면,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 살 수 있습니다.


알퐁스 도테의 [고셰 신부의 불로 장생주]란 꽁트입니다. 가난을 미덕으로 삼던 프레몽트르 수도원의 재정이 바닥나자, 수도원 뾰족탑이 무너지고 창문도 깨져버렸지만, 그런 것을 손볼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마침 그 수도원에 젖소 두 마리를 돌보던 고셰라는 수사가 가난에 찌든 수도원을 가슴아프게 생각하여 수도원장의 허가 하에, 불로장생주 전문가였던 양부모 어깨 너머로 배운 '불로장생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동안 밤낮 애쓴 결과, 마침내 불로장생주를 빚는데 성공하여, 그 때부터 그가 빚은 불로장생주는 프랑스 전역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가, 수도원은 돈방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수도원건물은 웅장하게 고쳐졌고, 뾰족탑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습니다. 그 공적으로 고셰 수사는 신부서품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신부들이 경건하게 저녁미사를 드리는데, 누군가가 성당에 뛰어들어 괴성을 지르며 혀 꼬부라진 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불로장생주를 시음하느라 알코올중독에 빠져, 제 자리도 찾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고셰 신부였습니다. 미사 드리던 신부들은, 술 주정하는 고셰 신부에게 "사단아 물러가라!"며 그를 끌어내고, 다시 경건하게 미사 드렸습니다. 다음날 수도원원장은 고셰 신부의 성당출입을 금하고, 주조장에서 불로장생주만 빚으며 혼자 기도하라고 명하자, 마음 착한 고셰 신부는 '이제 술을 그만 만들겠으니, 예전처럼 젖소 돌보는 일을 하게 해달라'고 눈물로 간청했으나 수도원장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매일 미사가 끝날 때마다 말했습니다. "우리 수도원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사랑하는 고셰 신부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러나 그 기도소리를 들으며 고셰 신부의 영혼과 육체는 주조장안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존. 디. 록펠러는 "가장 가난한 사람은 돈 밖에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영혼에 대한 관심 없이, 물질만 추구하는 삶이 가장 가난한 삶입니다. 마더 테레사가 미국 순회 도중에 만난 굉장한 부자가 테레사를 도와드리려고, "당신은 뭐가 제일 필요하십니까?"라고 묻자 테레사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합니다. "저요?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그분이면 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면 충분합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의료선교를 하던 의사가 하도 바깥이 시끄러워서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가난한 아이들이 마당에서 그토록 재미있고 행복하게 놀기에, 무얼 가지고 저렇게 재미있게 노는가 보니, 그가 버린 깡통을 쓰레기통에서 주워 놀고 있었습니다. 그는 '먹고 버린 깡통가지고도 저렇게 아이들이 행복해하는데 미국 아이들은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도 저런 행복을 누리는 걸 못 보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22:1). 하나님과 교제 속에서 내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이웃과의 관계에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인생의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여 평안을 누리며,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3~21절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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