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7 108회
“우리는 주님이 판단하십니다”
2021년 1월 17일 주일예배
고린도전서 4 : 1 - 5 ; 시편 101 : 6
여러분은 사람을 무엇으로 평가하십니까? 하나님은 사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한자 ‘중심(中心)’을 한 글자로 하면 ‘충’(忠)으로, ‘충성, 성실, 신뢰’를 뜻합니다. 마더 테레사는 “하나님은 우리를 모두 성공하라고 부르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성실하라고 부르셨다”라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에 대한 자기 평가와, 다른 사람의 자신에 대한 평가가 따로 있음을 말합니다. 먼저, 그는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판단에 대해 언급합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고전4:3a). 당시 고린도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고 그리스도파 등 파벌이 있었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지도자에 대해선 극도의 찬사와 함께 천사처럼 높였고, 반대로 자기가 반대하는 지도자에 대해선 주관적인 생각으로 함부로 판단했습니다. 이런 저들의 판단에 대해 바울은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며, 저들의 판단이 악의에 찬 비난일지라도 개의할 필요가 없고, 또 천사처럼 높이는 칭찬이라도 대단할 게 없어, 이런 사람의 평가를 개의치 않겠다고 합니다. 사람의 평판에 좌우되면, 비난받으면 쉽게 낙심하거나 침체되기 쉽고, 칭찬 받으면, 자칫 교만해지거나, 자기 페이스를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 번째로 자신에 대한 자기 판단에 대해 말합니다.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고전4:3b-4a).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도직을 수행하며 최선을 다했기에 태만이나 과오를 범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충성을 다했으나 그렇다고 자신을 의롭다고 판단하지 않는데, 내 판단, 내 고집, 내 주장에 사로잡히면, 그것도 자칫 독선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그 것이 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했느냐’가 중요하고, ‘그것이 정말 최선이었느냐?’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나름대로 잘했다고 생각돼도 이것으로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 바울은 주님께서 판단하시는 판단을 말합니다.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4:4b).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것만이 옳다는 것입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내 인생의 주인이시며, 나를 섭리하시고, 마지막날 나를 심판하실 그분의 판단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정확하고, 가장 공정한 판단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 위한 자세는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 본분을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4:1). 여기 ‘일꾼’이란 ‘아래에서 노 젓는 사람’을 말하고, ‘맡은 자’란 ‘청지기’나 ‘관리인’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먼저 배 밑바닥에서 노 젓는 사람처럼, 자기 의사나 자유에 관계없이 주인의 뜻에 절대 복종하면서, 또 주인으로부터 책임 맡은 자로서 주인의 뜻을 받들어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가지고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는 것은, 커다란 배의 밑에서 노 젓는 노예처럼, 내 생각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주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와 함께, 또 청지기처럼, 주인을 위해 교회라는 하나님의 집안 살림을 맡아 주어진 자율권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일을 하는 이중적인 신분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감당해야합니까?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 이 ‘충성’이란 말은 ‘성실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삶 속에서 가장 원하시는 모습이 바로 성실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에 우리가 어떻게 일하는지 그 성실성을 찾으십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그 성실성을 보기 원하시며, 그 성실을 칭찬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면 이 ‘충성’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납니까? 첫째,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주인을 사랑하여 헌신합니다. ‘충성’의 ‘忠’자가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자이듯, 겉치레나 눈가림이 아닌, 중심으로 주인을 사랑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둘째는 끝까지 변함 없이 섬기는 자세입니다. 사도 요한는 “죽도록 충성하라”(계2:10)고 했습니다. 여기서 ‘죽도록’이란 ‘끝까지’라는 의미입니다. 교회 직분도 맡은 기간 동안 끝까지 봉사해야지, 도중에 그만 두면 그 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룟 유다도 처음엔 열심히 봉사했겠지만, 나중엔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변함 없이 끝까지 섬기는 것이 충성입니다. 세상 끝까지 지속될 일은 신앙 생활입니다. 여기서 인생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셋째는 죽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입니다. 주위의 찬사와 평판을 따지지 않고 주어진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충성은 곧 믿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충성을 믿어주실 때, 우리에게 축복이 임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시101:6). 주님께로부터 인정받도록 주님 일에 충성 다하여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해야겠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