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손에게 물려줄 유산

2020-02-23 127회

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

마태복음 7장 1~2절

설교요약 :

"자손에게 물려줄 유산"
2020년 2월 23일 주일예배
창세기 9 : 20 ∼ 29 ; 마태복음 7 : 1 ∼ 2


한 신문기자가 '올해의 기업인상' 수상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입니까?" 그 수상자가 대답합니다. "다섯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우선 저는 사람들을 항상 공정하게 대했습니다. 다음은, 저는 항상 적정한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셋째, 항상 정직했고, 넷째, 직원들을 늘 관대하게 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250억 원을 상속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시겠습니까? 여러 해 전 프린스턴 총장을 지냈던 분은 "당신의 자녀들이 축복된 미래를 살아가기 원한다면 결코 재물을 유산으로 남기지 말고, 그 대신 정신적 가치를 유산으로 물려주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강돈욱'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그는 교육가였고, 교회의 믿음 좋은 장로였습니다. 그에게는 강반석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 딸에게 반석이란 든든한 이름도 지어주었고, 그가 세운 창덕기독학교의 교사인 김형직을 남편을 짝지어주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탄압이 심해지자 딸과 사위는 만주로 보내면서, 그들 사이에서 낳은 외손주는 영특하고 리더십이 뛰어나 소련으로 유학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외손주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김성주, 민족분단의 주범이자 625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입니다. 해방이 되자 김일성은 소련을 등에 업고 1948년 10월 10일 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주석이 되면서, 자기에게 반대하는 목사들은 다 구속시켰습니다. 우리나라 믿음의 가정에서 생긴 슬프고 충격적인 역사입니다. 양승헌 목사님이 평양에 갔을 때 김일성 자서전을 보니, 이런 글이 써있더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일요일마다 내 손을 붙들고 교회에 갔다. 목사의 설교는 길고 지루했다. 어머니는 계속 졸고 있었다." 자녀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못해 일어난 민족의 비극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이런 불행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여호수아가 죽고 나서 사사기에 이런 슬픈 이야기가 나옵니다.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삿18:30-31). 모세의 아들이 게르솜이고 게르솜의 아들이 요나단입니다. 그 요나단이 미가가 만든 우상들을 섬겼고 우상의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이렇듯 믿음의 바통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으면 한 세대를 넘어서 우상을 섬기는 세대가 되고 맙니다. 김일성과 요나단의 이야기의 믿음을 다음 세대에 이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성경의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여러분은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길 원하십니까? 믿음보다 자녀가 세상에서 성공하기만을 원하진 않으십니까?


오늘 본문에는 축복과 저주를 물려받은 자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홍수사건 후에,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자기 장막에서 벌거벗은 채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술 취해 벌거벗고 자는 모습을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이 보고 이 사실을 두 형제에게 알렸습니다. 함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린 채, 옷을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벗은 몸을 덮어드렸습니다. 노아는 술에서 깨어 난 뒤에 이 아들들이 취한 행동을 알고는 둘째 아들 함에게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25절)며 저주를 내렸고, 셈과 야벳에게는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26-27절)며 축복했습니다. 이로 인해 셈과 야벳에겐 축복이, 함에게 저주가 내리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후손에게 축복과 저주를 물려준 세 부류의 조상을 보게 됩니다. 먼저 노아의 모습입니다. 노아에 대해 성경은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창6:8-9)고 하여, 노아는 당시 '완전한 자'요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말씀을 따라 방주를 예비하여 자신과 자기 가족을 살려낸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불신시대에도 방주를 만들어 심판에 대비하였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11:7).


그가 홍수로 인해 황폐해진 땅에 포도나무를 심고 소출을 거두자, 노아는 무서운 심판에서 살아난 데 대한 안도감과, 그리고 첫 수확을 거둬들인 기쁨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포도주를 마시며 그 동안의 긴장과 농사지어 얻은 수확을 즐긴 것은 나무랄 것 없으나, 그가 술에 취해 자제력을 잃고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자, 이것을 함이 보고 나발불므로, 함과 그 아들 가나안으로 하여금 범죄케 하여 홍수에서 살아남은 가족들에게 또 하나 죄악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게 했습니다.


여기서 노아의 잘못은 첫째, 자신을 절제하지 못한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노아가 포도주를 마신 그 자체를 크게 문제삼을 일은 아닙니다. 중동 지역에서는 음료수처럼 식사 때마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일반적인 습관으로, 예수님은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기적을 행하셨고, 마지막 성만찬에선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나눠주시며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며 성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5:23)고 권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아가 '취했다'는 사실입니다. 21절의 '취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솨카르'라 하여 '잔뜩 마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포도주의 과용에 대해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잠20:1)라고 경고합니다. 노아가 적당히 포도주를 마셨더라면 그런 추태를 벌이지 않았을 텐데, 그만 포도주에 취하여 절제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둘째,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노아는 포도주에 취했을지라도 단정하게 잠을 자거나, 설사 벌거벗었더라도 문을 잠갔더라면, 함이 이것을 보고 떠벌릴 일이 없었을 텐데, 그는 술 취해 벌거벗고 하체를 자식 앞에 드러냈습니다. 사람이 옷을 갈아입거나, 몸을 씻기 위해서 옷을 벗을 수는 있으나 그 벗은 모습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드러내면, 그것이 자신의 수치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실족케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저녁 때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를 데려다가 범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이 죄를 지었지만, 그 원인은, 밧세바가 왕궁 지붕에서 훤히 보일 수 있는 위치에서 옷을 벗고 목욕함으로 인해, 피차 죄를 범하게 되는 기회를 유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의 죄는, 먼저 자신이 짓는 죄가 있고, 다음에 죄를 회개하지 않고 반복하는 죄가 있으며, 그 다음엔 그 죄를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는 죄가 있고, 나아가 다른 사람도 죄짓게 만드는 죄가 있습니다. 설사 나는 직접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범죄케 하면, 그 책임이 없다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7)라고 경고합니다. 노아는 술 취하여 벌거벗은 모습을 자식 앞에서 드러냄으로 자식을 범죄케 하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셋째, 노아는 자식을 저주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25절에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며,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합니다. 22절엔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렸다"고 했는데, 그 저주를 함의 아들 가나안이 받은 이유를 성서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함이 받을 형벌의 가혹함을 더하기 위해 가나안으로 대표되는 그의 후손들을 저주했다'고도 말하고, 또 '가나안이 노아의 수치를 처음 목격하고 그 사실을 함에게 고한 진짜 범죄의 하수인이요 공범이다'고 해석합니다. 아무튼 함과 가나안이 저지른 짓은 괘씸해도, 노아가 자식을 저주한 것은 문제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무리에게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노아는 홍수에서 가족들을 구원도 했지만, 그 후손에게 저주도 남겼습니다. 우리는 후손에게 축복을 끼칠지언정, 결코 자기 잘못으로 후손을 실족케 하거나, 저주를 남겨서는 안됩니다.


다음으로 함의 태도입니다. 성경은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창9:22)라는 말씀만 보면, 함에게 큰 잘못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아버지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모습을 본 것은 일부러 본 것이 아니라 눈에 띄었기 때문이고, 그 사실을 형제들에게 말한 것도, 없는 사실이 아니라 본대로 전한 것인데, 그것이 왜 죄가 됩니까?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여기에 함의 악한 모습이 숨어 있는데, 세 가지 잘못이 있었습니다.


첫째, 아버지의 수치를 계속 쳐다본 것입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라는 말씀에서, '보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라아'는 '흥미 있게 계속 주시했다'는 뜻입니다.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그냥 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악의적으로 즐겼습니다. 우리는 이웃의 실수나 잘못을 보며 '참 안됐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그것 참 쌤통이다'며 즐기기도 합니다. 함은 아버지가 술 취해 벌거벗은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왜 이러실까?'하고 안타까워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평소엔 큰소리 치더니 꼴좋다"고 조롱하며 속으로 즐긴 것입니다. 아동발달 분야의 권위자인 아널드 게젤 박사는 "어린이는 한 쌍의 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시각의 세계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 세계는 직접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자기만의 창조이다"고 말합니다. 사람에게 들어오는 정보의 80%는 눈을 통해 인지되기에 사람은 무엇을 보느냐가 삶을 좌우합니다. 세상에 추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좋은 것을 취사선택하여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 복입니다.


둘째,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가려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가족이란 서로 허물과 실수를 덮어주는 사이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잠들었을 때, 이불을 걷어차고 자면, 혹시 감기라도 걸릴까봐 몇 번이고 이불을 다시 덮어줍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런 모습을 목격했을 때, 덮어드리지 않고 그냥 나올 수 있겠습니까? 함은 아버지가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잠든 것을 보고 덮어드리지 않고 그냥 나온 것은, 평소의 그의 마음속에 아버지가 실수하기를 바랬고, 마침 그 모습을 발견하니까, "옳지 쌤통이다"하며, 그것을 가려드리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들추어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셋째,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밖에서 나발분 것입니다.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라는 말씀은, 함의 아버지에 대한 적극적이고 불경스런 자세를 나타냅니다. 정상적인 부자관계라면, 자식이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목격하면, 차마 입밖에 내기 어려워해야 할텐데,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고는 밖에 나가 형들에게 자랑하듯 떠벌리며 나발불어, 형제들까지도 아버지의 수치를 보게 하여 함께 비난하도록 충동했습니다. 죄인의 심리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범죄하도록 하여, 저들과 동류의식을 갖게 하고, 그래서 자신의 심리적 안정감을 얻으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함의 태도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함부로 비난하지 말 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1-2).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3-5).


25년 동안 MBC 기자와 뉴스 앵커를 하다 사직하고, 목사가 된 조정민 목사는 KBS '무한도전'의 '나쁜 기억 지우개 특집' 멘토로 출연하여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비리 대상자를 집중 취재해서,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게 사회정의라고 생각했다. 비리를 저지른 사람을 뉴스로 부각시키고, 매장 당하기를 원하거나, 법적 제재를 받도록 기꺼이 고발도 했다. 한계에 부닥친 것은 그 사람이 비리를 잠시 멈췄을 뿐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기자들이 비판하고 비리를 폭로한다고 해서 결코 세상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다는 결론을 얻었다.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권력으로 가는 '대증적' 변화와, 힘 자체를 품어 안아 무력화하는 '본질적'인 변화가 있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본질적 변화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비판과 정죄로는 안됨을 알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함은 온 세상이 물에 잠기는 홍수심판에서 아버지 덕에 살아남았다면, 비록 아버지의 실수가 있더라도, 그것을 덮어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실수를 떠버린 것은 아버지의 권위를 부정하고, 그 은혜를 부정한 태도였습니다. 우리가 모든 이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 관대해야하지만, 특히 윗사람의 허물에 대해선 더욱 신중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도전하는 것은 자칫 하나님께 대한 도전일 수 있습니다. 비록 노아에게 이런 실수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의인으로 인정하셨고, 홍수 후에 그를 이 땅에 새로운 인류를 번성케 하시는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면 셈과 야벳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23절입니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창9:23). 함으로부터 아버지의 부끄러운 말을 듣고, 셈과 야벳이 취한 행동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첫째,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도 않으려고 고개조차 뒤로 향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본들 무슨 큰일이 나랴만, 자식된 입장에서 아버지의 수치를 보는 것은 아버지께 대한 불효라 여겼기에, 보지도 않으려고 애써 뒷걸음쳐 들어갔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지만, 할 수 있는 대로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을 보는 것이 덕입니다.


이집트의 마카리우스 수도사가 살던 마을의 한 처녀가 유혹에 빠져 임신한 일이 드러나 사람들이 누구의 짓이냐고 다그치자 그 처녀는 마카리우스를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분노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거의 죽을 정도로 때리고, 그 처녀 부모는 자기 딸을 먹여 살리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한 그를 놓아주지 않으려 하자, 마카리우스는 이를 약속하고 돌아와서 밤낮으로 일해서 그 처녀를 부양했습니다. 그녀가 드디어 출산하는데, 여러 날 산고를 겪었지만 아기를 낳지 못하자, 사람들이 "어찌 된 일이냐?"라고 묻자, 그 처녀는 "제가 그 은수사를 중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이를 갖게한 것은 그분이 아니라 아무개 청년입니다"라고 고백하고서야 아기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에게 기도 받으러 온 사람이 어느 사제가 범죄했으니 찾아오지 못하게 하라고 하자, 마카리우스는 "사제가 비록 죄인일지라도 주님은 그를 용서하실 것이고, 나는 그 사제보다 더 큰 죄인이다"며 남을 판단치 말라고 했습니다. 마카리우스의 이런 덕은 제자 푀멘에게도 이어졌습니다. 한 수도사가 푀멘에게 "형제가 잘못하는 것을 보면 그것을 감춰주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묻자 푀멘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는 순간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시며, 우리가 형제의 허물을 드러내는 순간에 하나님도 우리의 허물을 드러내신다."


둘째, 옷을 자기들 어깨에 매고 뒷걸음쳐 들어갔습니다. '시믈라'라고 불리는 이 '겉옷'은 유대인들이 낮에는 걸치고 다니고, 저녁엔 이불처럼 덮고 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옷'이란 단어 앞에 히브리어정관사 '하'가 붙어있어, '그 옷'이란 말로서, 아버지 노아가 술에 취해 벗어놓은 옷이었습니다. 그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덮어드렸는데, '어깨에 매었다'는 말도, 히브리 문화권에서는 멍에를 어깨에 매듯, 섬기는 종의 태도를 뜻합니다. 셈과 야벳은 비록 아버지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들어 있지만, 아버지를 섬기려는 태도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셋째, 아버지 수치를 덮어드렸습니다.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행여 누가 아버지 수치를 볼까봐, 덮어드렸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무화과 잎으로 겨우 가린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주셨고,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을 십자가로 덮어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아프리카 바벰바 부족은 누군가 죄를 지으면 그를 마을광장에 세우고 부족 모든 사람들이 그를 빙 둘러서서 죄지은 사람을 비난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몇 시간, 며칠이고 칭찬하고 나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새사람이 되었다고 축하하며 잔치한답니다. 이처럼 좋은 점만 사실대로 계속해서 이야기해주면, 잘못한 사람은 눈물 흘리며 뉘우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고백하며 새롭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런 태도로 셈과 야벳은 아버지 노아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9:26-27). '찬송하다'는 '바라크'란 말을 하나님께 적용하면 '찬송하다'는 뜻이지만, 사람에게 적용하면 '축복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셈에게 축복을 베푸시길 원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와 동행하시며 셈의 후예 중에 메시야가 탄생하시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야벳을 창대하게 하신다'는 말은 '야벳의 공간을 넓혀준다'는 뜻으로, 그들의 영토나 인구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명과 문화에도 해당되어, 야벳의 후손인 구라파의 문화와 과학, 철학, 법률 등, 모든 면에서 창성하게 되었습니다. 또 저들에게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셈의 종교적 축복에 동참함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셈족인 유대인으로 오셨고, 복음이 유럽으로 전해져 로마에서 꽃피우고, 이것이 전 세계로 퍼지는데 야벳의 후손이 쓰여져, 이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존 F. 케네디의 아내 재클린 여사는 어린 자녀들에게 경제적인 안정을 물려주기 위해 자기보다 23세나 연상인 그리스의 억만장자 오나시스와 재혼했습니다. 그녀의 기대대로 자녀들은 2천만 불 이상의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케네디 2세는 그 돈으로 유명 연예인들과 염문을 뿌리며 자유분방하게 살다가 자신이 조종하던 비행기 사고로 아내와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비극적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그의 아버지보다 여덟 살 적은, 불과 39세의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링컨 대통령의 어머니 낸시 행크스는 링컨이 9살 때 숨을 거두며 "네게 100에이커의 땅을 물려주는 것보다 이 한 권의 성경책을 물려주는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고 유언했습니다. 물질이 아니라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링컨을 대통령이 되게 했던 것은 바로 이 정신적 유산입니다. 믿음의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긍심을 물려준다면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인생을 살 것입니다.


정약용 선생은 자녀들에게 3대째 의원 집안이 아니면 그 약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3대라는 세월 동안 쌓인 의원으로서의 신뢰와 원칙, 시행착오 끝에 검증되기에 먹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신앙에도 3대가 있습니다. 신앙은 쌓여가며 인격을 만들어 갑니다. 1대는 뿌리는 때, 2대는 자라는 때, 3대는 열매 맺는 때입니다. 3대쯤 가서야 원숙한 신앙과 인격이 나타납니다. 지금 부지런히 뿌려놓아야 자녀 대에 거두게 됩니다. 다른 무엇보다 '믿음'의 가훈은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유산입니다. 진정 복 받기를 원한다면 자신만이 의로운 냥 함부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의 허물까지도 서로 덮어줄 때, 자신과 후손에게까지 자자손손 축복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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