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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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

빌립보서 1장 12~18절

설교요약 :

"그리스도인의 생각 바꾸기"
2020년 6월 21일 주일예배
빌립보서 1 : 12 - 18 ; 시편 126 : 5 - 6


일본 이즈미 시게치요 씨가 123세 237일로 기네스북 장수 세계 1위에 올라, 이를 기념하는 파티에서 한 기자가 "좋아하는 여성의 타입은 어떻습니까?" 묻자, 이즈미 씨는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보여도 응석꾸러기 같은 면이 있어서, 저는 연상이 좋아요." 그가 세계최고연장자인데, 그보다 연상이 어디 있으랴만, 누구에겐가 안기려는 그의 동심 어린 마음이 장수의 비결인 듯 싶습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습니다. "생각을 조심하라. 왜냐면 그것은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말을 조심하라. 왜냐면 그것은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행동을 조심하라. 왜냐면 그것은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조심하라. 왜냐면 그것은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인격을 조심하라. 왜냐면 그것은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생각이 바뀌면 태도가 바뀌고, 태도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인격과 운명까지 바뀌게된다고 합니다.


아랍의 한 부호가 죽을 때가 되자 두 아들에게 3:2의 비율로 재산을 나눠주려고 하는데, 말을 타고 사막을 횡단하는 경주로, 자기 말이 먼저 도착하면 2만큼 갖고, 늦게 도착하면 3만큼 갖는, 말이 먼저 도착하면 지는 경주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형제는 서로 자신이 탄 말을 늦게 도착시키려고 서로 눈치보며 늦게 가려고 하니까 도무지 진전이 없고 사막의 땡볕이 뜨겁게 내리쬐어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어느 현자가 뭐라고 방법을 알려주자 형제는 말을 급히 몰기 시작했습니다. 현자가 알려준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정답은 말을 바꿔서 타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도착하면 지는 것은 '말'이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형은 동생의 말을 먼저 도착시켜서 이기면 되고, 동생은 형의 말을 먼저 도착시켜서 이기면 되었던 것입니다.


공자가 관리로 있는 조카 공멸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그 자리를 맡아 일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공멸이 힘들다는 표정으로 "예, 얻은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잃은 것만 세 가지 있을 뿐입니다. 일이 많아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것이 그 첫째이오며, 보수가 적어 부모님과 친척들을 제대로 봉양하지 못하는 것이 그 둘째이고, 공무에 쫓겨 시간이 없다보니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여 친구들을 잃는 것이 그 셋째이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공자는 공멸과 같은 직위의 제자 자천에게 똑같이 물었습니다. "예, 잃은 것은 하나도 없고 세 가지를 얻었습니다. 옛날에 책을 통해 배운 것을 직접 실행해봄으로 하나하나 깨닫게 되는 것이 그 첫째이오며, 보수를 절약해 부모님과 친척들을 정성껏 봉양할 수 있는 것이 그 둘째이옵고, 공무 이외의 시간을 짬 내어 친구들과 교분하니 우정이 더욱 두터워지는 것이 그 셋째이옵니다." 공멸과 자천은 똑같은 직위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있었지만 이렇듯 서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상식을 초월하셨습니다.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낮은 땅에 오신 것부터 예상외였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막2:27)라는 말씀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모두 높은 자리에서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6-27)하신 말씀도 다른 사람들이 생각 못했던 교훈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의 전혀 예상치 못한 생각을 보게됩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AD. 50년경 제2차 전도여행 때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고 건너가 유럽에 최초로 세운 교회로서, 바울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교회였고, 또 바울의 사역에 언제나 사랑과 정성으로 후원을 다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란 단어가 무려 16번이나 반복될 만큼, [기쁨의 서신]입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스스로 기뻐하였고, 빌립보교회를 향해서도 기뻐할 것을 거듭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그가 처한 상황이 과연 기뻐할 형편이었을까요?


바울의 생애를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그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요, 실패한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바울은 우선 가정의 안락한 행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배필을 만나 행복한 가정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정처 없이 외로운 나그네의 생을 살았습니다. 또 사람은 누구나 물질적인 안정과 풍요를 누리길 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기근과 궁핍에 시달렸고, 때론 천막을 기우며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또 사람들은 신체적인 안전과 건강을 행복의 필수요건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건강에 있어서도 육체적 고통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매맞고, 감옥에 갇히고 사막과 풍랑 속에 시달리며, 숱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고후11:23-27).


바울은 그가 처한 여러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생각을 바꾸어 창조적인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는 다음 세 가지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믿음으로 응답하여 기쁨을 누립니다. 첫째, 그가 처한 주변 상황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1:12). 그가 말하는 '내가 당한 일'이란 7절의 '나의 매임'으로, 자신이 로마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지금 감옥에 갇혀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답답한 상황에 있었으나 이 억울하고 답답한 옥살이에도 '선교적 의미'가 있음을 알고 기뻐했습니다.


둘째, 다른 사람들과 불편한 인간관계입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빌1:15-17). 우리가 어려운 상황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입니다. 바울이 오기 전, 로마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아왔는데, 바울이 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바울에게 집중되어 기분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닌 적이 없는 거짓 사도라는 소리도 들렸기에, 로마교회 지도자들은 '바울은 가짜여도 저렇게 열심인데 우리는 베드로처럼 정식으로 사도 된 사람들의 전통을 이어 받은 사람들인데, 바울보다 못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에 좋지 못한 시기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며 오직 복음이 전파되는 것만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셋째, 생사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빌1:21-23). 희곡 [햄릿]에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고 말했듯, 자신의 살고 죽는 문제보다 더 심각하고 절실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재판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위험과, 그리고 오랜 수감생활로 인한 건강의 악화로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감옥에서 죽을 수 있었음에도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바울은 어떻게 생각을 바꿨습니까? 첫째, 그는 감옥에 갇혀 일을 못해 낙심하기보다, 그 안에서 할 일을 찾았습니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빌1:13). 바울은 억울하게 로마에 끌려와 감옥에 갇혀, '언제나 풀려날까'하며 감옥에서 나갈 날만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할 일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그 안에서 만나는 시위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12절)고 말합니다.


여기 '진전(進展)'이란 말은 원래 공병대용어로서, '길을 놓는다'는 뜻입니다. 당시 로마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말이 끄는 전차였습니다. 전차가 진군하기 위해선 먼저 길을 뚫어 그 길로 전차가 진군해 들어가면 그곳이 곧 로마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전차가 나아가기 위해 늘 길을 닦아야 했고, 길을 닦은 만큼 로마의 영지가 넓혀졌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로마의 길을 보았지 않느냐? 길만 만들면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는 것처럼, 지금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그 일 때문에 이제까지 닦아지지 못한 복음의 새로운 영지가 열리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겪고 있는 억울한 상황까지도 복음의 길을 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왕의 경호를 맡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습니다. 당시 시위대는 대부분 로마정신에 투철한 명문집안 자제들로만 구성될 수 있었는데, 그 수는 9천에서 1만 3천명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은 후로는 로마왕권이 점점 기울어 힘을 잃게 되었고, 시위대의 세력이 확장되어 왕을 폐위시키거나 세우기도 하는 '황제제조기'라고도 불렸는데, 바울은 그 답답한 감옥에 갇혀서도 기회만 있으면 시위대 병사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13절). 그때까지 복음을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전할 수 없었는데, 이제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많은 사람 앞에서 재판 받았습니다. 원로원은 바울을 재판하기 위해 예수에 대해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새로 등장한 신흥종교의 메시야라는 예수가 누구인지 로마의 법조인들은 정확한 재판을 위해 예수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피고는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기에 바울에겐 변론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평소 그토록 로마에서 전도하길 원했기에, 이 변론을 전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시위대와 재판정 안에서 전도한 결과 복음이 각처로 퍼져나가는 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고관들에게 복음을 전한 결과, 네로 황제 때는 네로의 삼촌과 친척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도미티안 황제 때는 그 어머니와 딸들과 많은 고관들도 예수를 믿게 됨으로, 그 후 불과 300년도 안되어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로 선포됩니다. 당시 로마의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7%에 지나지 않았지만 최고 고관들이 믿었기에 그러한 역사가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복음이 전파되어 '온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그 믿음이 나타납니다. 빌립보서 4장에 '가이사 집사람 중 몇'(빌4:22)이라 하여, 황제의 가족 중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날 만큼 바울은 감옥에 갇혀 부자유했지만, 복음전파에는 오히려 성공적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에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 나쁘기 때문에 절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환경이 바울의 환경처럼 나쁘십니까? 그는 감옥에 있었고, 쇠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쇠사슬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바울을 가둔 쇠사슬을 사용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운 형편과 힘든 조건까지도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환경을 통해서도 위대한 일을 이루실 수 있도록, 주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기 바랍니다. 바울은 고백하길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어떤 환경도 우연은 없습니다. 그리고 불행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든 상황을 통해서 우리를 위대하게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크신 뜻을 믿어야 합니다.


어느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선교한다고 했지만, 10년 넘도록 아무 선교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선교비만 축내고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여 하나님과, 파송해 준 교회에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기도하는데, 하나님께 회개하며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제 힘으로 한다고 해봤지만, 아무런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 뜻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그 날도 선교하러 거리에 나갔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병원에 실려와 병상에 누웠는데, 마음이 서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10년 동안 단 한 명도 전도 못하고, 이렇게 다리까지 부러졌으니 이게 무슨 꼴이람?" 속이 상하고 원망스런 생각이 드는데, 문득 아침에 기도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제 '하나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하고 다리가 부러졌으니, 이것도 하나님 뜻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원망보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다리는 이렇게 저렇게 얼마든지 부러질 수 있는데, 다른 일을 하다 다리 부러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일을 하다 다리 부러졌으니 이것도 감사한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그는 병상에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그런데 옆 병상에 누워있던 환자가 묻습니다. "당신은 교통사고로 다리 부러진 처지에 무엇이 좋아서 감사하다며, 또 울면서 기뻐하느냐?" 선교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러 가다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살다보면 다리는 얼마든지 부러질 수 있는데,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일하다가 다리가 부러졌으니, 이것이 내게 얼마나 영광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듣더니, "그게 정말이오?"하고 묻기에 "정말이지 않구요? 내가 모르는 당신에게 거짓말할 일 있습니까?"라고 대답했더니, 이 사람이 한참 생각하다가 하는 말이 "나도 예수 믿겠습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이 사람이 그 지역에서 유력한 사람이었던지, 그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하는데, 1년이 지난 뒤에 보니, 다른 곳에서 10년을 전도하여 예수 믿게 한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사람으로 인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은 성공하기 마련입니다.


둘째,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부정적인 면보다 좋은 쪽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7-18). 바울은 믿지 않는 사람도 아닌 믿는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때, 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바울은 이에 대해 '그것은 오해입니다'라고 말 한마디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는 지금 멸시와 오해를 받고 있지만, 시기심으로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 많이 전해진다면 좋은 일이라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바울은 저들의 시기로라도 복음을 증거하는 모습에 기뻐했습니다. 저들은 비록 시기와 질투로 전도하지만, 바울은 자기 소원인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사실로 인해, 자신이 오해받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감정적인 일이 일어날 때, 그 감정에 자신을 맡기지 말고, 내가 따라야 할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바울은 같은 전도자들로부터 모략과 거짓말과 핍박을 당했지만, 전파되는 분은 그리스도시기에 기뻐했습니다. 삶의 원리에 입각하여 인간관계의 문제들을 해석했던 것입니다.


지난 3월 성남 어느 교회에서 분무기로 소금물을 성도들의 입에 뿌려 코로나19 확진자가 40명 이상 발생하여 비난여론이 들끓자, 그 교회 김모 목사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한국 사회와 교회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면서 "사태가 정리되면 그만둬야겠다"며 은퇴할 뜻을 밝혔습니다. 그 때, 우리 교회 어느 분에게 "그 목사님, 참 순진하다"고 말했더니, 대뜸 "그렇게요. 일이 잠잠해지면 그 교회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믿는 사람들까지도 온갖 욕설을 퍼붓는데, 생각이 부족하여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여 교회 덕이 가려지게 되자 '죽고 싶다'면서 "목회를 그만둬야겠다"고 말하는 그 목사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 분을 하나님은 '얼마나 어여삐 여기실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셋째, 바울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1:20).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남의 죽음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말처럼 이기적이어서, 무엇보다 자신이 편해야 다른 사람도 생각하는데, 바울은 자신은 이대로 죽더라도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길 원했습니다. 바울은 자기 죽음보다도 주님이 존귀하게 되기만 바랐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1). 그는 죽고 사는 일보다도 오직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만가 증거되고, 주님이 존귀케 되기만을 소원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자기야 살든 죽든 그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놓고 사는 사람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런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하나님, 죄송스럽지만 제게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오래 사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는 날 아침까지도 새벽기도회 나가게 해주세요. 새벽기도회 나가고, 그리고 그 날 죽게 해주세요. 오랫동안 누워서 뭉개고 여러 사람 신세지고, 더구나 식물인간 되어서 몇 년 가면 큰일입니다. 그렇게 하지 마시고 그저 깨끗하게 아무 때라도 좋으니까, 새벽기도 인도하고 새벽기도회 한 그 날, 요단강 건너가게 해주세요. 이 소원 하나만 이루어주세요. 간절한 소망입니다. 하나님 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깨끗한 소원이 있어야하겠습니다.


어떤 이는 '기쁨'이란 그 존재 안에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있지만 주님을 모시고 있었고 주님의 생명의 기가 뿜어 나왔기에, 언제일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도 기뻐했습니다. 워렌 위어스비는 "행복한 삶의 비밀은 의무감을 가지고 기뻐하는 것이다. 의무가 기쁨이 될 때 무거운 짐들이 축복이 된다"고 말했는데, 바울은 고난도 주님을 위한 것임을 알고 기뻐했습니다.


작가 오인숙 씨의 책 [생각을 바꾸시는 하나님]에 실린 간증입니다. - 4년 전 내가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병원침대에 앉아 있을 때, 한 인턴이 들어와 내 얼굴을 살피더니 의아해하며 물었다. "혹시 병명을 아시나요?" "예, 알고 있어요"라고 대답하자, 놀란 얼굴로 "대단히 용감하시네요"하고 나갔다. 병 문안을 왔던 사람들도 내가 의연해 보였던지, 내게 혹시 '왜 하필 나일까'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꼭 내가 아니라는 법이 있는가'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정말로 하나님은 내가 스스로에게 좋은 질문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때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런 체험을 할 기회를 주셨을까? 이 체험이 내 삶에 어떤 유익을 줄까'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병원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렸는데, 함께 예배드리는 환자들을 보면서 '저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했고, 나의 병은 하나님께 맡기고 병원교회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가는 환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검사를 받으러 이동할 때마다 병원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가 병든 청년을 위한 성금을 모금하기 위해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그 전시회를 보면서 나는 하나님께 '저도 병든 사람을 돕고 싶어요.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했다. 하나님은 내가 입원하기 직전에 출판사에 넘긴 책 네 권의 인세를 소아암 환자를 위해 썼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주셨다. 살면서 나에게 고난이 다가올 때, 하나님은 이와 같이 내가 하나님께,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질문을 하게 하셔서 '고난은 나에게 훈장을 달아 주는 것'이라는 체험을 하게 하셨다.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마음의 생각을 바꾸면 자기 세계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자살'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되고, '역경'을 거꾸로 읽으면 '경력'이 되고, '인연'을 거꾸로 읽으면 '연인'이 되고, '내 힘들다'를 거꾸로 읽으면 '다들 힘내'가 됩니다. 신세타령을 멈추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당한 일이 복음의 진보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십시오. 그 속에서 창조적인 열매를 얻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우리는 모든 일을 어리석고 좁은 인간의 소견으로 판단하기보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신령한 차원에서 생각하면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12~18절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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