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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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

고린도전서 3장 10절

설교요약 :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
2020년 9월 6일 주일예배
창세기 1: 1-5,26 - 31 ; 고린도전서 3 : 10


두 남자가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찾아가 그 장엄한 협곡을 바라보다 한 남자가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야. 정말 놀라워!"라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남자는 그 계곡의 등성마루를 바라보고 침을 뱉으며 "내가 일 마일이나 멀리 침을 뱉은 건 이번이 처음이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놀라운 자연의 절경을 보면서도 아름다움을 경이롭게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겸손히 자연을 바라보면,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신성과 그 놀라운 섭리를 발견할 것입니다. 언론인이며 작가인 헨드릭 반 룬이 그랜드케니언을 처음 방문하고서 "나는 무신론자로 이곳에 왔으나 이제 신자가 되어 이곳을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크리스천 의사 폴 브랜드는 필립 얀씨와 함께 쓴 명저 [오묘한 육체]에서 의사로서 처음 살아있는 세포를 관찰한 감동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세포야말로 지상의 최대의 경이 중 하나라면서, 사람들이 진정한 생명의 경이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하루종일 이 세포의 비밀을 경탄해도 부족할 것이라며 이렇게 감탄합니다. "나는 누구라도 이 세포의 신비를 설명할 수만 있다면 여러 비행기를 전세 내어 내 돈이 바닥날 때까지 온 하늘에 감탄부호를 그릴 것이다. 그리고 9개월 간 정교한 방법으로 기능을 나누는 수십 억 개의 세포와, 수백만 개의 간상체와 원추체가 생겨나고, 단 하나의 수정된 난세포에서 10조개의 세포가 생성되어 한 아기가 태어나는 이 신비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시편기자도 이 신비를 깨닫고 이렇게 찬양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


인간의 불행은 자신이 지닌 혜택을 모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언론재벌인 월리엄 헐스트는 귀중한 세계적인 미술품과 골동품을 수집하고 그것을 즐기는 것을 생의 목적처럼 여기며 살았습니다. 진귀한 미술품이 있으면 세계 어디라도 찾아가 그것을 사들여 소장했습니다. 어느 날 유럽 왕가에서 사용했던 도자기를 잡지에서 보는 순간 그는 거기에 정신을 빼앗겨 '저것을 내가 꼭 사야겠다'하고 유럽을 여러 번 여행하며 그 도자기를 추적했지만 도무지 그 종적을 알 수 없어 안타까워하며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잡지에 그 골동품에 대한 기사가 났는데 그 골동품이 미국인에게 팔렸다고 써 있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굴까 하고 이름을 자세히 보았더니 놀랍게도 자기 이름이었습니다. 이미 그 소장품은 자기가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사 두기만 했지 살펴보질 않아서 자기가 가지고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그렇게 애를 태웠던 것입니다. 우리도 자기가 가지고서도 그 사실을 모르거나, 그 가치를 모르면 갖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화론자들이 진화를 구체적으로 설명 못하고 그냥 비약하는 것이 셋입니다. 그것은 무에서 유, 무생물에서 생명체, 비 인격체에서 인격체로의 진화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들이 설명 못하는 부분을 '창조'(바라)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본문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여 무에서 유의 창조, 21절은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하여, 생명의 창조,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 하여 인간의 창조, 이 세 곳에만 창조라 했고, 다른 곳은 '만들다'는 '아사'(창1:16, 25, 26)라는 단어를 썼고, 2장 7절과 9절은 기존의 사물을 새로 조성한다는 '야찰'이라 했습니다. 인간도 기존의 재료로 다른 것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창조는 하지 못합니다.


천문학자 케플러(Kepler)가 무신론자인 친구에게 '이 우주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말하자, 그 친구는 "아니야, 어떤 궤도 안에서 가장 우세한 힘을 가진 별이 다른 별들을 지배함으로 생겨난 우주의 법칙에 불과해. 태양계란 그 자체의 힘으로 생성된 것이지, 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닐세!"라며 우주는 어떤 기계적인 질서에 의해 우연히 생겨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케플러는 아무리 설명해도 그 친구의 생각에 아무런 변화가 없자,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자요, 주관자이심을 깨닫게 하려고 태양계의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수성, 금성, 지구 등 태양계의 별들을 실제 크기의 비율에 맞게 만들고는 그것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며칠 후, 케플러의 천문관측소를 방문한 그 친구는 아름다운 태양계의 모형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정말 아름답군! 이 근사한 모형을 누가 만들었지?" 케플러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만들지 않았어. 저 모형은 그저 자기 힘으로 생겨난 거야." 그러자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 말합니다. "그런 엉터리 대답이 어디 있나? 누가 만들었나, 자넨가?" 그러자 케플러가 진지하게 말합니다. "자네는 방금 이 작은 모형이 결코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다고 했네. 하지만 이것은 자네가 저절로 생겨났다고 믿는 진짜 우주에 비하면 아주 간단한 모형에 불과해. 이 보잘것없는 것도 누구의 손이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하면서, 어찌 이 거대한 우주에 대해서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친구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먼저 완전한 평화가 있었습니다. 벌거벗고서도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었던 자신에 대한 그대로의 수용(2:25), 아담이 하와에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는 사랑의 고백, 하나님과 직접 대화할 만큼 친밀한 교제가 있었습니다. 처음 창조하신 세상은 아무런 갈등이나 다툼, 혹은 미움과 싸움이 없는 참된 평화의 낙원이었습니다. 어떤 대립이나 분쟁이 없는 참된 평화의 세계였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세상에는 아무 부족이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다"(창2:9)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비손과 기혼과 힛데겔과, 유브라데라는 네 개의 강이 온 땅을 적셔주었습니다(창2:11-14). 이스라엘 백성이 살던 팔레스틴은 물이 부족한 사막이라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이 있는 메소포타미아를 풍요의 땅으로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은 이보다 곱절인 네 개의 강이 있는 풍족한 땅이었고, 그곳에는 '순금, 베델리엄, 호마노' 같은 보석도 있었고,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창1:29)도 풍성한,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참된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장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4, 10, 12, 18, 21, 25, 31절). 이 말은 심미적인 아름다움도 뜻하지만, 이 '좋다'는 뜻의 히브리어 '토브'는 '위대한, 놀라운, 완벽한, 아름다운' 등을 나타내는 말로, 그 외면과 내면 모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세계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조각가는 미켈란젤로인데, 그의 작품 중에도 '모세상'은 손꼽히는 걸작으로 손 끝 하나댈 수 없는 완벽한 작품이지만, 정작 미켈란젤로에겐 '미흡한 데'가 있는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그 모세상 발등엔 좁고 긴 흠이 있는데, 이것은 '모세상'이 완성된 후, 미켈란젤로가 '왜 너는 말을 하지 않느냐?'고 외치며 끌로 발등을 내리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31절)고 하셨습니다. 창조를 마무리짓는 이 말씀은 앞에서 반복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감탄사(4, 10, 12, 18, 21, 25절)보다 더 고조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고 아름답게 성취됐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고전3:10))라며, 인생을 집 짓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우리는 건축자로서 우리 인생을 짓습니다. 건축자는 건물을 설계자의 의도를 따라 건축해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며 설계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네 인생은 정말 놀라운 작품이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 되기 위해 몇 가지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창세기 1장에 제일 많이 나오는 구절은 '하나님이 이르시되'로서, 2절, 6절, 9절, 11절, 14절, 20절, 22절, 24절, 26절, 29절에 열 번이 나옵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음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11:3)라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천지가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이 이르시되'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할 때마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결과는 '그대로 되니라'는 표현입니다. 7절, 9절, 11절, 15절, 24절, 30절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그 소감을 피력하셨습니다. 어느 한 가지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거나 실패하지 않고, 그대로 하나하나 이루어지는 모습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토록 아름답고 흡족하셨던 것입니다.


목회자가 목회하면서 가장 기쁘고 감사한 것은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을 때, 성도들이 삶 속에서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는 '이 일은 오늘 이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다'고 여겨, 교우들에게 '우리 힘을 모아 이 일을 이룹시다'며 간곡히 당부하여, 성도들이 힘을 다해 그 일을 이룰 때, 목회자는 한없는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우리 교회가 어려운 중에도 성도들이 힘을 모아 탄자니아에 학교를 세우고, 또 교육관을 건축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주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 좋은 삶이 되고,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 성공적인 삶이 됩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곧,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면, 그것이 곧 우리 인생의 성공이요, 만약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자체가 인생의 실패입니다. 우리가 최후의 심판대에 설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이것을 물으실 것입니다. '네가 세상에서 살 동안 내 뜻을 이루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그 기준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상도, 무서운 벌도 내려질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밤에 말을 타고 사막을 여행하던 세 사람이 이상한 나그네를 만났습니다. 그 나그네는 그들에게 얼마 가지 않아 마른 시내를 건너게 될 것이라면서 "당신들이 그곳에 도착하거든 말에서 내려 시내에서 자갈들을 주워 자루와 호주머니에 채우시오. 그리고 계속 여행하다가 해가 뜰 때 당신들이 주운 자갈들을 살펴보고 당신들은 기뻐하며 한편으론 애석해 할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의 말처럼, 세 사람은 마른 시내에 도달하여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많은 자갈 중에 몇 개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음 날 해가 뜰 무렵 그들은 주워온 자갈들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자갈들은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등 보석들로 바뀌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막에서 만났던 나그네의 말을 그제야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주워온 자갈들이 보석으로 변해있어 기뻐했으나 더 많이 주워오지 않은 것이 애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처럼, 주님께 받은 명령들을 순종으로 응답할 때, 우리 삶은 소중한 보석들로 가득히 채워질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에서 '형상'이란, 히브리어로 '첼렘'이라 하여, 어떤 사물과 그것을 그린 그림이 서로 닮은 것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닮은꼴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인간만이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교제할 수 있는 접촉점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육체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인간도 거룩한 존재로,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처럼 인간도 사랑의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자식은 아버지를 닮듯,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을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그 하나는 바로 '사랑'입니다. 요한일서에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고 하여,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면, 우리 또한 마땅히 하나님을 닮은 '사랑'의 성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번 살펴봅시다. 내 안에 과연 하나님을 닮은 '사랑'이 있는가? 만약 이 '사랑'은 없고, 그 대신 '미움'이나, '사나움'만 가득하다면,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스스로 자처할 수 있겠습니까?


미우라 아야꼬의 [사랑하며 용서하며]라는 책에 1954년 가을 연락선 토오야 호가 태풍을 만나서 전복될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승객 몇 천명 중에서 1,011명이 이 날 밤의 조난으로 사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도오야 호에는 2명의 외국인 선교사가 승선했었는데, 그들은 구명대가 없는 젊은 남녀에게 자기들의 구명대를 주고는 죽어갔습니다. 그녀는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선교사 사진을 자기 방에 걸어 놓고 있다고 책은 기록합니다. 사랑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는 힘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거룩함'입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동물은 땅을 바라보며 살지만 인간은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3:1)는 말씀대로, 우리는 위를 바라보며, 하나님 닮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라고 권면했습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이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거룩입니다. '성도'라는 말 자체가 '거룩한 무리'란 뜻으로, 하나님께 속하여 세상과는 구별된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다는 점에서 거룩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을 닮아 깨끗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갈 때, 참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비웃고 조롱하는 이유도 자기들의 생활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기에 그리스도인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중국 길림성에 사는 은색 족제비는 자신의 청결함을 지키는 특별한 습성이 있는데, 사냥개에 쫓겨서 자기 굴로 피신했다가 사냥꾼이 입구에 지저분한 것으로 더럽혀놓으면, 사냥개에게 물려 죽을 줄 알면서도, 자기 몸이 더럽히지 않기 위해 뒤로 돌아선다고 합니다. 성도는 어떤 손해나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깨끗이 지키는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부정한 땅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왕이 주는 기름진 음식을 거절하고 채식만 하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처음 하신 일이 축복하신 일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은 이 축복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라는 것이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온 땅을 채워 자연과 모든 생명에까지 미치게 하라 하십니다. '내가 이렇게 복을 주니까,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라, 받은 복을 이웃과 온 땅과 다음 세대에 끼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된 자로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이 범죄하자 그 심판의 결과가 자연에까지 미칩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인간이 범죄하면 땅까지 저주를 받습니다. 전에 공산주의였다 지금은 자유를 얻은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동독, 러시아 같은 나라 사람들이 말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니 우선 농사부터 안 된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남한은 식량이 남아도는데, 북한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립니다. 이건 눈앞에 보이는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실 때는 어떻겠습니까? 과연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시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실까요? 옛날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자, 그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불순종하니,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15:11)고 후회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후엔 몹시 흡족해하시며,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보면, 라이언 일가에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제2차 대전에 참전하여 세 명이 전사하고 남은 한 아들마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최전방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정부는 이 아들만이라도 그의 어머니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그 임무를 존 밀러 대위와 여덟 명의 군인들에게 맡깁니다. 밀러 대위는 독일군 점령지역 한 가운데서 제임스 라이언 일병을 찾아내다가 자신을 비롯한 여덟 명의 군인이 모두 독일군에게 죽고 맙니다. 밀러 대위는 마지막 숨을 거두며 라이언 일병의 귀에 이렇게 말합니다. "라이언, 꼭 살아서 돌아가. 그리고 잘 살아야 돼!" 그 후 수십 년이 흘러 라이언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 부인과 자녀들과 함께 다복한 모습으로 자기를 살리기 위해 죽은 밀러 대위의 묘를 찾아 그 앞에서 말합니다. "대위님! 다리에서 하신 말씀을 매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잘살려고 노력했고, 그런 대로 잘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대위님의 눈에, 대위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보였길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고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버리신 예수님 때문에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분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잘살아야 해! 하나님 앞에 잘살아야한다!" 이 다음에 천국에서 그 분을 뵈올 때, "주님, 주님의 희생을 단 한순간도 잊지 않고 잘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어떠셨는지요?"하고 아뢸 수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페르시아의 왕이 세 사람의 현자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괴로운 일이 무엇이오?" 한 사람이 대답합니다. "뭐니뭐니해도 늙어서 가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젊어서는 가난해도 상관없지만, 늙어서 가난해지면 참으로 비참합니다." 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견딜힘에 한계가 있는데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주어질 때가 제일 괴로운 일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아무 선행도 없이 임종을 맞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제야 왕은 "네 말이 맞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잘살고 못 살고가 뭐 그리 대단한 일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창조주의 뜻에 합당한 한 가지도 한 적 없이, 제 맘대로 인생을 살다가 임종을 맞게 된다면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았느냐 여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 '너는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고 말씀하신다면, 그 인생은 성공입니다. 그러나 '너는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말씀하신다면 그 자체가 이미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례 받으실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11)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 형상대로 사랑과 거룩함으로 살며, 이 땅을 복되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며 "보기에 심히 좋구나"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 인생은 복되고 성공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0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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